몽골의 한 평원에서 만난 말 무리가 먼지를 일으키며 내달리고 있다. 2019. 몽골. ⓒ임종진
어릴 때부터 유난히 좋아하는 동물이 ‘말’이다. 반려로 삼아 직접 키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로 TV를 통해서였지만, 멋진 갈기를 휘날리며 들판을 내달리는 모습을 항상 경탄스럽게 바라보곤 했다.
서부영화나 국내 역사 드라마 등의 전투 장면 중 이 동물이 “히히힝”거리며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에 안달이 났었다. 단단해 보이는 데다 수려하기까지 한 근육질 자태에 매혹당한 꼬맹이 시절 내내 나는 스케치북이 닳도록 말 그림을 그려댔다. 성년이 되고 사회생활에 절절거리는 오십 대의 나이까지 이른 지금에야 어느 정도 수그러들긴 했다.
그러나 얼마 전 몽골의 광활한 초원에서 우연히 말 무리를 본 순간 다시 심장이 요동쳤다. 수십마리의 말들이 땅을 굴려 들리는 말발굽 소리가 내 몸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멀찍이서 바라보기에는 아쉬움이 컸다. 어느새 나는 무리 한가운데로 냅다 뛰어들었다. 건장한 말들이 옷깃을 스치듯이 가까이 왔다가 겨를도 없이 빠르게 지나갔다. 뽀얀 먼지구름이 푸른 공기를 뒤엎었고 거친 숨소리들은 급기야 온몸이 짜릿하게 곧추서게 했다.
불과 몇 초도 되지 않을 그 짧은 순간 나는 다시 소년이 된 듯 잃어버린 동심이 되살아나는 특별한 느낌을 얻었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말 무리의 뒷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고 요동치는 심장을 애써 눌렀다. 짙푸른 하늘과 드넓은 대지 안의 말 무리. 대자연이 내어준 장엄한 풍경의 일부라도 된 양 우쭐해진 가슴을 다독이고는 기꺼이 고개를 숙였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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