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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오늘하루

고향 친구의 전화

한동안 자주 들른 서울 성동구 가래여울 마을에서 고향 들녘의 흙길과 비슷한 감흥을 얻곤 했다. 2010. 서울. ⓒ임종진


고향 친구가 근래 들어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온다. 특별한 용무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어떻게 지내냐는 안부를 묻는 일이 대부분이다. 종종 낮술 몇 잔 걸치고는 불콰해진 목소리로 보고 싶다는 말만 계속 되풀이할 때도 많다. 내용이 어떠하든 친구의 전화벨이 울릴 때면 반가운 마음에 하던 일도 냉큼 멈추게 된다. 단 한 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는 친구의 목소리에는 걸쭉한 막걸리 내음이 가득하다. 찐한 충청도 사투리가 들려올 때마다 소설 속 어린 왕자를 만난 듯 아련하면서도 흥겨운 감흥에 젖어 들게 된다. 유년 시절로 돌아가 친구들 무리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랄까. 흙먼지 폴폴 날리는 시골 들녘을 여기저기 뛰놀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특정한 장소를 지칭하며 묻지도 않은 고향 소식이 실려 오기라도 하면 아련함까지 한층 더해진다. 돌이 많은 산동네였던 ‘돌팍모랭이’, 밤 까먹느라 정신없던 ‘밤동산’, 골짜기에 고인 샘물에서 멱을 감곤 했던 ‘고리동’ 등등. 지금은 더 이상 부를 일이 없으나 어린 시절 대부분 몸을 맡겼던 터전들이 병풍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여러 연유로 고향을 멀리 한 지 오래되었지만 친구의 전화 이후 가뭇해진 기억을 일부러 더듬는 일이 잦아졌다. 그 많은 흙길들은 그대로 남아 있으려나. 한 번쯤 들러 추억 속 한자리에 서고 싶은 맘이다. 친구는 내려오면 자기 집에서 자야 한다며 벌써부터 벼르고 있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친구와 함께 고향 들녘의 흙길들을 찾아 한번 거닐어보고 싶다. 혹시 40여 년 전 내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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