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프랑스 몽티냑 마을 소년들이 강아지를 찾던 중 거대한 벽화가 그려진 동굴을 발견했다. 이 동굴이 그 유명한 ‘라스코 동굴’(사진)이다. 약 2만년 전에 그려진 라스코 동굴벽화는 원시미술을 대표한다. 벽화에는 말과 사슴 등 여러 동물이 등장하는데 가장 눈에 띄는 동물은 머리에 뿔이 달린 가로 길이가 약 4m인 소이다. 이 소는 오록스종으로 스페인 투우에 등장하는 거친 황소들의 조상이다.
구석기인들은 왜 거대한 소를 그렸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 그 이후의 역사를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약 1만년 전 차탈회위크 유적에 거대한 소를 그린 벽화가 있다. 학자들은 차탈회위크 사람들이 소를 숭배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약 5000년 전 크레타섬의 신화에 전설적인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등장한다. 머리는 소이고 몸은 인간인 미노타우로스는 크레타 문명의 상징이었다. 미케네 문명의 왕자 테세우스는 이 상징을 죽이고 미노스 문명을 정복한다. 이후 그리스 문명의 신들은 동물이 아닌 인간의 형상을 갖는다.
인류의 대표적 문자인 알파벳 ‘A’는 본래 소를 의미하는 기호였다. 문자에서조차 소가 가장 첫머리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소는 인류에게 가장 친숙한 존재였음이 틀림없다. 몇몇 평론가는 가상과 현실을 토대로 라스코 벽화의 동물들이 가상의 사냥감이라고 말한다. 그림 가운데 있는 붉은 사슴은 사냥감이 맞다. 하지만 거칠게 달려가는 소의 경우 단순한 사냥감이 아니라 쇼베의 동굴곰처럼 라스코 동굴의 상징이자 숭배 대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동굴벽화에는 소가 많이 등장한다. 구석기인들에게 소는 신성한 동물이었고 농경시대에는 친숙한 가축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저 음식 재료 정도로 여겨질 뿐이다. 인류에게 신성하고 친숙했던 가축들이 공장에서 사육되고 도축되면서 그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한다. 인간이 대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대상의 운명이 달라진 것이다. 신에서 스테이크로 추락한 소를 떠올릴 때마다 디자인에 있어 가치 기준이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이다. 때론 잔인하게 느껴진다.
<윤여경 디자인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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