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진, ‘트로피’ 연작 중 양말 서랍, 2011
출근길. 노아의 방주를 방불케 하는 지하철 안의 그 많은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흩어져서 어떤 일을 하는 걸까. 커피나 휴지 같은 회사 비품을 마련하기 위해 결재를 받으러 쫓아다니고 있을까 아니면 하루 종일 환자의 입속을 들여다보며 충치를 치료해 주고 있을까. 따지고 보면 저마다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전쟁을 치르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그 전쟁의 성격과 주인공들의 모습은 어떤 식으로 식별할 수 있을 것인가. 사진가 최현진의 ‘트로피’는 이 전쟁 속 전리품과도 같은 사물들에 관한 작업이다.
그것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서랍이나 바구니 같은 사각의 틀 안에 담겨 있다. 네모난 사무실의 네모난 서류철처럼 틀에 박힌 형식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전리품이 보관되기에는 안성맞춤인 장소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그 안에 담긴 내용물들과 배치의 방식은 소지품 주인공의 하는 일과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두툼한 신용카드 영수증 뭉치와 304장의 명함, 현금 다발이 빼곡한 은행의 대여 금고까지 작가가 탐정처럼 수집해 놓은 이미지들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초상 같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어느 고위 관료의 양말 서랍은 단연 압권이다. 상점의 쇼룸처럼 가지런하게 정돈된 양말은 조금씩 무늬는 다르지만 온통 검은색이다. 마치 존재감을 부각하되, 너무 튀지는 않게 살아남고자 하는 관료들의 생태계를 반영하듯. 사물들을 증명사진처럼 찍은 뒤, 묘비명을 달 듯 모든 작품마다 제목을 단 작가는 양말 사진 아래 이렇게 적었다. ‘관료인의 외적 강박.’ 그렇다. 현대의 전리품들은 강박을 낳는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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