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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먼 곳

Antoine Bruy, Scrublands


그가 우리 나이 스무 살 즈음에 길을 떠날 때, 자신도 그 여행이 어떻게 끝을 맺을지 몰랐다. 스위스에서 태어난 앙투안 브뤼는 이웃 나라들을 더 알고 싶다는 심정으로 프랑스부터 모로코까지의 히치하이킹을 택했다. 얻어 탄 차가 데려다 줄 수 있는 만큼의 이동은 그에게 커다란 상점도 없고 전화도 터지지 않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선물했다. 그때의 만남은 다시 수년이 흐른 뒤 앙투안에게 더 외진 곳에서 더 절제된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찾아 나서게 했다.

문명을 등진 채 살아가는 이들은 유럽 땅에서만도 꽤 많아서 그는 지난 3년 동안 유럽 전역을 떠돌며 15곳 이상을 방문했다. 전기도 없고, 아무런 편의 시설도 없는 고립된 곳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집을 짓고 식량을 구한다. 텃밭을 일구고 가축을 가꾸고, 사냥도 떠난다. 중요한 것은 자연의 순리에 맞춰 지속가능한 노동과 생산을 꿈꾼다는 데 있다. 라디오나 밥그릇, 양동이처럼 문명에서 가지고 온 최소한의 살림살이는 삶이 소박한 이곳에서 더욱 알뜰하고 쓸모 있어 보인다. 그렇게 앙투안의 사진 속에서는 풍경도 사람도 사물도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조화롭고 편안하다. 동시에 굳이 애쓰지 않았음에도 사진 속 모든 대상들은 힘 있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 먼 곳의 풍경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깊은 위로가 된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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