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금선, 째르빼니, 오월 단오, 2013
그것은 죽이기를 작정한 이주였다. 1937년 스탈린은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 18만명에게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들은 세간을 꾸릴 시간도 없이 가기 싫다고 우겨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화물칸 기차에 실려 1만5000리의 이주 길에 오른다. 춥고 배고프고 힘든 길이었다. 우즈베키스탄에 할당된 7만7000명 중에서 1만명 가까이가 넉 달의 이주 기간에 사망했다. 산 사람을 지키려면 기차 안에서 숨을 거둔 자식을, 부모를 기차 밖으로 떠밀어 바람 찬 허공에 장사를 지내야만 했다. 도착해서는 헛간이나 땅 웅덩이를 집 삼아 모질게 살아난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김씨, 허씨, 유씨 등의 성을 쓴다.
대구의 인문사회연구소와 함께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기록 작업에 참여한 사진가 한금선이 그 결과물을 서촌 류가헌에서 소개하고 있다. 유독 그늘진 곳, 마음 여린 사람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한금선이 오래간만에 소개하는 사진은 좀 더 잔잔해졌지만, 여전히 울림은 깊다. 흰 구두를 신은 할머니와 염색 머리에 검정 구두를 신은 할머니의 춤사위. 윤기 없는 바닥 위 한껏 조심스러운 발놀림 속에 공작 깃털 무늬 원피스는 우아하게 바람을 일으킨다. 교실 안 뜬금없는 듯 보이는 이 장면에 알리바이를 제공하듯 칠판에 새겨진 우리말, 오월 단오. 전시 제목 ‘째르빼니’는 이 아름다운 날, 아름다운 춤을 추기 위해 평생 그들이 늘 입에 달고 다녔다는 러시아 말이다. 지금도 그들은 ‘괜찮아’ ‘참아야지’라는 이 말과 함께 산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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