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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팬톤표 얼굴색

Angelica Dass, Humanae 319-7


미국 팬톤사가 만든 팬톤 컬러 가이드는 가장 과학적인 색채집이다. 색마다 알파벳과 숫자로 고유 번호를 붙인 이 색표들은 인쇄, 페인트, 패션 등 정교한 색의 구분이 필요한 모든 산업 영역의 표준으로 통할 정도다. 유광과 무광으로 나뉜 이 색채들은 각각 1000가지가 넘는다. 팬톤 컬러는 언어에서의 흰색이 시각적으로는 결코 같은 색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올해 대구사진비엔날레 주제전에 참여하는 브라질계 사진가 안젤리카 다스는 이 과학적 색채표를 사람에게 적용했다. 작가는 우선 각 인물을 찍은 뒤 그 주인공의 얼굴에서 추출한 11×11픽셀의 견본과 정확히 일치하는 팬톤의 색을 골라낸다. 그 다음 사진의 배경색을 포토샵을 통해 이 팬톤 색으로 바꿔 넣는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라틴어로 사람을 뜻하는 ‘휴마내’. 그는 마치 전 인류의 초상을 모두 찍기라도 하려는 듯 인터넷을 통해 자발적 참여자를 모집한다. 작업의 뜻에 동의만 한다면 국적, 성별, 나이는 당연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안젤리카 다스의 얼굴 사진들은 백인, 흑인, 황인이라는 고정관념만을 깨뜨리는 것은 아니다. 컬러 차트에서는 그 어느 색도 우선순위를 갖지 않듯, 그의 인물들은 인종, 피부에 대한 고정관념은 물론이고 권위와 계급을 상징하던 과거 초상화의 전통마저도 무너뜨린다. 더불어 여권 사진이나 경찰서의 용의자 사진처럼 사람들을 분류하고 통제하려는 사진 자체의 속성에도 은유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작가가 본인의 작업에 붙인 코드 번호들은 역설적이게도 개인을 저마다의 이해관계에 따라 코드화하려는 모든 제도에 던지는 도전장이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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