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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거미로 태어난 엄마


루이즈 부르주아, Spider-Maman(거미-엄마), 루브르미술관 튈르리 공원(출처 :경향DB)



마흔에 작업을 시작해서 일흔에 명성을 얻고, 팔십에는 스튜디오에서 작업만 하겠다고 외부 출입을 삼가며 하루 서너점의 작품을 완성했던 여자. 그리고 ‘새터데이 아티스트 토크’를 만들어 전 세계의 작가들을 자기 작업실로 끌어들였던 예술가. 내 삶의 큰 스승이기도 했던 루이즈 부르주아!

부르주아는 1911년 파리에서 태피스트리 보수공장(숍)을 운영하던 가정에서 태어났다. 권위적이고 호색가였던 아버지와 조용하고 인내심이 강한 어머니 아래서 세 남매 중 둘째딸로 성장했다. 특별히 둘째딸을 사랑했던 아버지가 들인 영어 가정교사는 10년 이상 아버지의 정부로 살았다. 어머니는 둘 사이를 알고도 묵인했지만, 똑똑했던 부르주아에게 아버지와 정부를 감시하는 일을 맡겼다. 그때부터 부르주아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증오라는 양가적 감정에 시달려야 했다.

부르주아는 죽기 몇 해 전 인터뷰에서 “지난 오십년간 내 모든 작업은 나의 유년시절을 바탕으로 한다. 내 유년은 결코 마술을 잃어본 적이 없다. 또 결코 신비를 잃어본 적이 없으며, 드라마틱한 지평을 잃어본 일도 없다”고 회고했다. 그만큼 그녀의 작업은 유년시절의 상처와 기억을 근간으로 한 것들로, 그 상처와 기억을 치유하는 메타포로 가득 찬 것들이다. 특히 ‘거미-엄마’는 유년시절의 트라우마를 예술로 승화시킨 대표작이다.

사실 ‘거미’는 어머니에 대한 상징이다. 어머니는 태피스트리 복원공장을 운영하느라 일생 동안 바느질을 해온 여자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희생자였다. 부르주아는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이 집요하고 이성적인 동시에 희생적인 어머니를 보고 거미를 떠올렸다. 그녀에게 어머니는 마치 한 마리의 거미처럼 지적이고, 깨끗하고, 인내심 있고, 쓸모 있으며, 합리적이고,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존재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 거미는 어머니의 대리인이자 부르주아 자신의 분신이 되었다. 이제 내용을 모르고 보던, 그래서 섬뜩하게만 느껴졌던 거미가 좀 애처롭고 살갑게 다가오지 않는가!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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