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브레히트 뒤러, ‘멜랑콜리아 I’, 1514년, 동판화의 일종인 드라이포인트와 에칭 기법.(출처: 경향DB)
11월 말은 가장 멜랑콜리하다. 이 멜랑콜리한 느낌이 적어도 내겐 슬픈 행복이다. 심연의 상상력을 끌어올리는 동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멜랑콜리의 감정을 인문학적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을 창의적인 것으로 변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멜랑콜리는 ‘검은 담즙(melaina chole/black bile)’이라는 뜻으로 우울로 해석된다. 15세기 말, 피렌체의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중세의 체액우주론(humoral cosmology)과 더불어 점성학에 관심을 가졌다. 다시 말해 점성술적인 견해와 신화적인 비유들을 결합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멜랑콜리의 행성을 토성(saturn:새턴/사투르누스/크로노스)으로 삼고, 전통적으로 흙, 겨울, 건조, 차가움, 북풍, 검은색, 늙음과 관련지었고, 그 특징을 내향적이고 나태하고 침울한 기질로 인식하였다.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견문을 넓힌 인문주의자 뒤러는 이런 신플라톤주의자들의 견해에 동조하면서, 우울 없이는 어떠한 상상력도 기대할 수 없으며, 예술가의 우울증이 오히려 천재성을 강화해주는 요인임을 깨달았다. 그런 그는 <멜랑콜리아 I>을 통해 날개를 단 존재가 턱을 괴고 앉아 허공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옆의 아기천사는 무언가를 열심히 기록 중이다. 건물 벽에는 사다리가 세워져 있고, 기하학을 나타내는 다면체와 구, 굶주린 개 한 마리도 보인다. 아랫부분에는 톱, 대패, 망치 등의 각종 도구들이 널려 있으며, 상단의 건물 벽에는 모래시계, 저울, 종 등이 매달려 있다. 그 옆에는 ‘마방진(magic square)’이라고 불리는 숫자들이 적혀 있다.
그런데 이 모든 대상들보다 더욱더 우리의 시선을 강력하게 사로잡는 것이 있다. 바로 생각에 잠긴 인물의 ‘눈동자’이다. 그는 아무 행동도 하고 있지 않지만 빛나는 두 눈은 무엇인가에 한껏 몰입해 있다. 이 모습이야말로 세계를 탐구하고 우주의 오묘한 질서와 미의 법칙을 밝히려고 고군분투하는 예술가 혹은 지식인의 초상이다. 그것은 뒤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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