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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아주 아름다운 예배

마리아와 갓 태어난 아기, 언제나 멀리 떨어져 있는 요셉, 그리고 천사들의 합창, 목동들의 경배는 미술사에서 흔한 예수 탄생 장면이다. 동방박사가 오기 전 단계의 상황을 그린 장면이랄까. 요셉과 마리아는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투스의 법령에 따라 호구 조사에 응하기 위해 나자렛에서 베들레헴으로 떠났다.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마리아는 진통을 느꼈으나 묵을 곳을 마련하지 못했다. 누가복음에서는 이곳을 묘사하지는 않았으나 아기가 구유에 놓였음을 명백히 밝힘으로써 그곳이 마구간임을 암시했다.


플랑드르의 화가 후고 반 데르 구스의 ‘목자들의 경배’는 1475년쯤 메디치은행의 브뤼헤 지점장이었던 이탈리아인 토마소 포르티나리의 의뢰로 그려졌다. 3년 동안 브뤼헤에서 그려져 배로 운반되어 피렌체까지 들어온 이 그림은 1483년 산 에지디오 성당의 포르티나리 제단 위에 걸린다. 이 그림은 당시 피렌체의 모든 화가들이 몰려와 구경하고 연구하며 영감을 얻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플랑드르 저명 화가들의 그림은 당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은행가와 대상인들이 소장하고 싶어 하는 인기품목이었다.



후고 반 데르 구스, 포르티나리 세폭 제단화 중 ‘목자들의 경배’, 1479년, 패널에 유채, 우피치미술관 소장(출처: 경향DB)



플랑드르 회화는 기법상 새로운 사실주의가 드러난다. 특히 구스의 작품은 중세의 신비주의와 섬뜩할 정도로 정교한 현실의 모습이 탁월하게 혼재한다. 특히 이 그림이 가진 세부묘사의 정확성, 표정이 풍부한 인물묘사, 대담한 사실주의 기법은 이탈리아 미술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중앙패널에는 신앙심 깊은 양치기들이 신비로운 천사와 극적으로 대립되어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인간과 천사가 다른 크기로 변별되어 묘사된 점, 천사가 각기 다른 화려한 의상을 입고 있다는 점, 외부인지 내부인지 모호한 건축물 등 독특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전면에 놓인 한 짝의 신발, 짚단, 화병과 꽃과 같은 정물의 완벽한 디테일은 아주 특이한 양상이다. 이로써 부수적인 위상을 차지하던 정물묘사가 완전한 장식적 요소가 되는 등 피렌체 회화에는 없는 새로운 활력이 생긴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