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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삼미신과 삼위일체

서구의 미술관에 가면 세 여자가 서로의 어깨를 만지며 서 있는 조각상이 있다. 조각뿐만 아니라,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 같은 유명한 회화작품 속에도 이런 포즈의 여자들이 등장한다. 이런 전형적인 여성 누드를 ‘카리테스’(Charites)라고 한다. 카리테스는 그리스어 카리스(Charis)의 복수형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미와 우아함의 여신을 일컫는다. 로마 신화에서는 ‘그라티에’(Gratiae)라고 부르며, 미술사에서는 삼미신이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는 <신통기>에서 이들의 이름을 에우프로쉬네(Eu-phrosyne·기쁨), 탈리아(Thalia·꽃의 만발), 아글라이아(Aglaia·빛남)라고 밝히고, 제우스와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의 딸 에우리노메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호메로스 또한 카리테스가 각각 매력·아름다움·창조성을 상징하며, 이 세 속성이 곧 비너스의 특성이라고 말했다.



삼미신, 2세기, 그리스 조각의 로마 카피(출처: 경향DB)



신화 속 카리테스는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아폴론이나 비너스와 같은 주요 신들을 보좌하며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역할로 묘사된다. 세 여신은 신들을 모시고 가무하는 모습으로 표현되곤 하는데, 이 포즈도 춤동작의 하나인 것 같다. 2세기쯤에 활약한 그리스의 여행가이자 지리학자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제단의 방 한쪽이나 음악공연장 같은 곳에서 여러 미술가들이 그리고 새겨 넣은 카리테스 세 여신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 다시 카리테스가 특별히 자주 그려진다. 고대 그리스 정신의 계승이라는 모토를 가진 르네상스 시대에 이 소재가 부활했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플라톤 철학에 유대교를 접목시킨 신플라톤주의를 신봉했던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베누스-인간성’(venus-humanitas)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비너스를 인간성 또는 인간 진화의 최고 단계로 해석했으며, 우주의 조화에 대한 완벽한 인격화로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삼미신은 마치 기독교의 성 삼위일체와 같은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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