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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게이들의 수호신, 성 세바스찬



남성 누드의 전형인 아폴론을 제치고 르네상스에 새롭게 등장한 누드가 있다. 바로 성 세바스찬! 그는 로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재위 284~305)의 근위장교다. 세바스찬은 당시 공인되지 않은 기독교 신자였고, 형장으로 끌려가는 기독교도들을 격려한 탓에 사형선고를 받았다. 군중이 보는 앞에서 나무기둥에 묶인 채 화살을 맞는 형벌을 받았던 것이다. 화살을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난 세바스찬은 황제를 찾아가 그리스도교를 전하고자 했고, 결국 그 자리에서 돌에 맞아 죽는다.


7세기에 흑사병이 로마를 휩쓸었을 때, 로마인들은 마치 궁수가 활을 쏘듯이 신이 이 질병을 내려 보냈다고 생각했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화살에 맞아도 죽지 않았던 역사 속 인물인 세바스찬을 기억해냈다. 그들은 세바스찬을 흑사병에서 백성을 구할 수 있는 치유의 능력이 있다고 믿게 되었던 것. 그리하여 사람들은 화살을 맞고도 살아있는 세바스찬의 모습을 제단화의 한 구석에 그려 넣거나 따로 기둥에 그려 넣었다. 마치 부적과 같은 주술적 목적을 위해서였다.


한편 이 그림은 동성애의 욕망을 은연중에 내비치는 그림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반나체의 남자가 사형을 받기 위해 단 위로 올라갔을 때 사람들은 젊고 건강한 세바스찬의 모습에 순간적으로 매료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아폴론 조각같은 아름다움을 발견했다고나 할까. 게다가 무장해제된 희생자의 나약함은 그 희생자를 탄압하는 형리들의 잔인함과 대비되어 감동은 더욱더 배가되었던 것 같다. 마치 예수그리스도처럼 말이다. 화살이 의미하는 바는 또 무엇인가? 통상 화살은 정신분석학적으로 남근으로 해독된다. 화살은 세바스찬을 에로스의 대상으로 쳐다보는 남성들의 관음의 시선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그림 속 세바스찬은 마치 황홀경에 빠져있는 모습이다. 화살을 맞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면서도 왠지 쾌락에 빠져 있는 느낌이다. 순교와 관능이 접맥되는 이 순간이야 말로 ‘고통 속에 쾌락’을 의미하는 주이상스(Jouissance)가 아닐까?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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