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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오늘하루

거울 속에 있는 나


부인이 안치되어 있는 납골당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찍고 있는 이사영씨. 2016. ⓒ이사영

한 늙은 사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래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진 부인을 찾아온 길. 적막이 흐르는 납골당 안에서 그는 자신을 주목했다. 천천히 카메라를 들어 그대로 셔터를 눌렀다. 과거 군사정권의 대표적 조작사건인 1974년 울릉도 간첩사건 피해자 이사영씨. 무자비한 고문과 15년에 이르는 수감생활로 자기 인생의 대부분을 두려움으로 살아야 했던 그가 거울 속 자신의 형상에서 본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대법원의 무죄판결로도 깊게 파인 내면의 상처가 아물지 않더라는 그였다. “더 이상 잊혀지지 않을 겁니다.”


사회에서 고립된 채 홀로 벽 속에 갇혀 있었던 기억 때문일까. 팔순을 넘긴 초로의 그는 몇 해 전부터 카메라를 들고 몸이 허락하는 한 적극적으로 세상과 조우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고문했던 옛 중앙정보부 조사실을 비롯해 서대문형무소와 같은 아픈 기억의 공간들과 수차례 직면하는 것은 물론 고궁, 바다, 동물원, 야구장 등 평소 가고 싶었으나 위축감으로 망설이던 곳들도 열정적으로 찾아다녔다. 그때마다 카메라를 들었다. 교도소 철창 바깥을 바라보며 한없이 그리워했던 자유를 이제야 즐기게 되었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자신의 마음과 뜻을 다 담아 찍는 게 사진이기 때문에 점점 흐뭇해진다는 말도 곁들였다. 그에게 바라본다는 것의 의미는 스스로 자기감정을 확인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어찌보면 그가 거울 속에서 바라본 것은 자신의 육신이 아니라 억압될 수 없는 존엄성 그 자체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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