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갑저수지 완공을 앞두고 마지막 가을을 맞이한 광대리 풍경. 1995. 청양. ⓒ임종진
충남 청양군 대치면 광대리. 칠갑산 자락 아래 예스러운 정취가 가득했던 이 마을은 지금 사라지고 없다. 아낙들이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시냇물로 빨래를 하고 종종 냄비며 밥솥을 씻던 풍경도, 갈 데 없는 동네 꼬마들이 ‘니캉내캉’ 멱을 감고 숨바꼭질 놀이로 시간을 때우던 그 풍경도 전부 마찬가지다.
산 좋고 물 좋기로는 어디 빠질 데가 없다는 이 동네를 처음 찾아간 때가 대략 25년 전쯤이나 되었을까. 가뭇해진 기억을 더듬으니 떠오르는 그 아름답던 정경들이 꽤 된다. 큰 저수지가 들어서면서 광대리가 물에 잠긴다는 소식을 어찌어찌 듣게 되어 아마도 마지막 추석이 될 그해 가을을 사진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마을을 찾아갔던 기억이다. 지역경제를 살리는 일이라 했지만 동네 주민들의 아쉬움은 너무나 컸었다. 밥도 얻어먹고 동네 어른들이 터놓는 안타까운 추억의 넋두리도 들으면서 며칠 머물던 기억이 어제처럼 가깝다. 밤하늘의 별은 또 어찌나 총총히 박혀 있었는지 그저 한 번 들른 동네의 기억이 이렇게 오래도록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지난달 청양의 한 기관이 요청을 해 강연을 다녀왔다. 마침 버스가 광대리 근처를 지나쳤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옛 기억의 장소를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당연히 눈에 들 일이 없었다. 그 당연함이 진한 아쉬움을 불렀다.
“잘 모르겄슈. 인자 물이 다 찼응게 떠나야 하는디 어디 딴디로 가서 사능 게 쉬운 일인가유. 평생 살아왔응게 기냥 이렇게 살다가 가믄 좋겄는디.”
밥과 잠자리를 얻었던 동네 할머니의 음성만 생생하게 살아 귓가를 흔들었다. 그 많던 귀한 삶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 있을까.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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