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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오늘하루

사람꽃을 틔우는 사람

공무원연금 개악저지 집회에 참석한 한 공무원노조 노동자가 휴대폰으로 자신의 딸이 담긴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2014. ⓒ정기훈


한 사람이 그가 속한 노동조합 집회에 참석해 아스팔트에 앉아 있었다. 또 한 사람인 사진가가 그의 곁에 머물며 서성거렸다. 잠시 숨을 고르던 노동자는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바탕화면에 깔아놓은 딸의 얼굴을 한동안 살펴보았다. 바로 이 순간을 사진가는 놓치지 않았다. 설명이 필요 없는 순간. 거친 음성과 구호가 떠다니는 현장에서 한 사람과 또 한 사람이 만나 ‘사람’임을 이루는 시간을 꽃처럼 틔워냈다.


둘 중 하나인 사진가 ‘정기훈’은 늘 남다른 솜씨로 꽃을 틔운다. 머문 자리 자체가 척박하고 처절한 토양일 뿐인데도 탁월하게 틔워낸 그의 꽃들은 예외 없이 경탄스러울 만한 자태를 품는다. 콜텍, KTX, 쌍용차 등 해고노동자의 단식농성장, 광화문 세월호 천막, 일본대사관 그리고 동네 노인들의 쉼터가 된 낡은 미장원 등등 그가 주시하고 머무는 거리의 토양들이 대개 그러하다. 그럼에도 그가 틔워낸 모든 꽃은 메마른 아스팔트를 촉촉하게 만드는 살내음으로 가득하다. 때론 아픔이 웃음으로, 때론 웃음이 아픔으로 승화된 그 향기는 오롯이 보는 이들의 시선까지 끌어안는다.


학생운동으로 젊음을 불태우던 시절, 불의의 사고로 절친한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을 지켜봤던 기억 탓일까. 아니면 원래부터 사람을 귀히 여기는 성정 때문일까. 그가 사람을 살피는 시선은 항상 자신과 다르지 않은 귀한 삶이라는 성찰에서 비롯되고 다시 형상으로 구현된다. 그래서 정기훈이 피우는 모든 꽃은 사람꽃이요 사진이 아니다. 사진가 정기훈을 계속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그러하다. 그의 통찰력 깊은 솜씨로 틔운 사람꽃 얘기들이 곧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온다고 한다. 사람으로 사람을 만나는 그의 시선들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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