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끊임없는 새로움에 도전했던 에로 사리넨의 뉴욕 JFK공항 TWA터미널(1961년 완공). ⓒBalthazar Korab
건축가의 능력을 평가할 때 단지 한두 개 건축 작품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설계 시 어떤 제약들이 있었는지, 건축주 혹은 발주처가 도중 변경을 요구했다거나 공사과정에서 건축가의 설계의도가 충분히 구현됐는지, 완성 후 설계의도를 존중하여 잘 관리했는지 등등 하나의 건축물이 완성되고 그것이 현실에서 기능하는 과정은 마치 한 편의 다사다난한 드라마와도 같다.
훌륭한 건축가의 판단 기준으로 평론가 바바 쇼조의 흥미로운 관점을 빌리면 ‘미분적 평가’와 ‘적분적 평가’가 있다.
미분적 평가란 한마디로 그 건축가가 얼마나 힘 있는 건축을 만들고 있는가, 디자인적인 가속도를 지니고 있는가다. 수학에서 곡선을 어떤 점에서 미분하면 접선의 방향을 표시하고 속도를 미분하면 가속도가 보이는 법이다. 이를 평가에 적용하자면 그 시점에 있어서 건축가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과 가속도를 나타낸다. 오르막길에 있는 건축가는 미분적 평가치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미국의 저명한 건축가 고 에로 사리넨의 경우가 대표적 사례다. 51세라는 한창 나이에 삶을 마감하기까지 비록 10여년에 불과한 짧은 활약기간 동안 그는 늘 작품마다 새로운 디자인 콘셉트를 가지고 근대건축의 가능성에 도전하며 놀라운 건축을 완성도 있게 만들었다. 만일 그가 급사하지 않고 오랜 시간 활동했다면 오늘날 우리가 보는 현대 건축의 풍경은 조금 달랐을 것이다. 우주에 다다르기 위한 로켓은 상당한 초기가속도 없이는 지구의 중력권을 벗어나기 힘들다. 스타트업 시점에서는 미분적 평가치가 높은 것이 유리하다.
이에 비해 적분적 평가란 현재까지 시간 동안 실적 축적에 대한 평가이다. 어떤 곡선, 즉 그 건축가가 걸어온 궤적을 적분하면 좌표축과 곡선 사이의 면적이 산출되고 그것이 그 건축가의 총체적 작품의 가치이다. 건축가뿐만이 아니라 각 디자인 분야의 대가들은 어느 시점에서 더 이상 디자인 성향은 거의 변하지 않게 된다. 이 경우 미분을 적용하면 그 평가값은 제로가 된다. 그것은 디자인 질이 낮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높은 수준에서 안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적분적 평가치가 높은 건축가라도 지속적으로 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눈물 나는 노력과 지구력이 필요한 법이다.
한편 초기 미분값이 높아도 그것의 적분치는 미미하다. 문제는 가속도만을 추구하다 보면 그 접선은 점점 수직에 가까워지다 어느 순간 하향 점을 향하고 그 적분값은 0에 가까운 것에서 한순간 마이너스 값으로 변해버린다. 건축이든 예술이든 남다른 창의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미분적 평가와 적분적 평가의 조화가 중요하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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