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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등대의 빛

예일대학 미술관과 루이스칸.


예술이나 패션처럼 건축계에도 다양한 미디어에 자주 소개되고 세상의 주목을 받는 스타들이 존재한다. 건축학도나 새내기 건축가들은 언젠가는 스스로도 그렇게 되기를 꿈꾸며 이리저리 회전하는 등대의 불빛을 쫓아가듯 디자인을 한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등대의 불빛이 지나간 뒤의 흔적을 좇는 것이고, 한번 지나간 자리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다시 비추어지지 않는 법이다. 움직이는 등대에 비추어지기만을 바란다면 오히려 아무런 미동도 없이 한곳에서 가만히 기다리는 편이 효과적일 것이다. 소위 유행이라 불리는 것이 디자인에 연관된 분야에 늘 존재해 왔다. 시대별로 보아도 항상 그 시대에 대표적이라 불리는 어떤 것이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러한 디자인을 고안한 건축가는 아이디어를 이론화하고 설계도로 표현하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것이 실현되고 미디어를 통해 소개된 시점에서 아무리 허겁지겁 쫓아가 보아도 수년 이상의 차이가 발생하고 이미 흐름은 다른 방향으로 전환된 이후일 것이다. 결국 허무하게 등대의 불빛 흔적만을 좇는 꼴이 되어버리고 만다. 


우리에게 침묵과 빛의 건축가로 널리 알려진 루이스 칸(1901~1974). 칸은 그가 활동하던 당시의 시대 흐름이었던 국제주의 양식과는 거리를 두고 묵묵히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무려 50세가 되어서야 첫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건물인 예일대학교 미술관을 시작으로 솔크 연구소, 킴벨 뮤지엄, 방글라데시 의사당 등의 숱한 역사적 명작들을 완성하였다. 


무언가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구멍을 파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직경이 작고 깊은 구멍을 팔 것인가, 반대로 얕아도 좋으니 넓게 팔 것인가 자신만의 철학이 필요한 법이다. 나비처럼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어 날며 여기저기 내키는 대로 파는 것은 피해야 한다. 주변의 공기 흐름이 바뀌었다고 냉큼 자신의 방법을 바꾸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지금까지 자신이 몰두해 온 것에 대해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디자인에 있어서 등대의 불빛은 그것이 회전하면서 적절한 곳을 단지 기계적으로만 비추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발신성능이 강한 쪽으로 자연스레 불빛이 향하는 법이다. 우직할 정도로 한 우물을 깊이 파면서 스스로의 발신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등대의 불빛을 유인하는 현명한 방법이다. 칸이 작고한 뒤 40여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에도 그의 건축이 시간과 유행을 초월하여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그가 지닌 발신의 강도가 그만큼 견고했기 때문이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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