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독창성의 법칙

비트루비우스가 <건축 10서>에서 ‘인체 비례의 규칙을 건축에 사용해야 한다’고 쓴 대목에 영향을 받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창조는 모방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성장하기까지 무수한 학습들, 즉 이전 것들의 모방을 통해 한 분야에서 숙달된 단계에 이른다. 그리고 세상에서 완벽히 독창적인 것은 잘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사고의 수단인 언어나 문자는 모두 기존의 것이며 그 결과물 또한 지나온 것들에 영향을 받지 않기 힘들다. 대체로 우리는 이전 것들의 색다른 조합이나 덧댐으로 새로움이라 부르는 것에 한 발짝 다가가는 식이다. 


좋은 건축을 만드는 데 있어 독창성은 필수 조건이나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질서가 되는 규범이 필요하다. 과거 시대별 양식이 규범이었고 근대에 와서 기능주의가 그 역할을 하였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건축 책이라는 비트루비우스의 <건축 10서>는 로마시대인 기원전 60년경 집필되어 오늘까지 읽히는 교양서이다. 책 제목처럼 1서에서 10서까지 건축가가 되기 위한 마음가짐에서부터 재료의 선택방법, 천문학, 무기제작법, 도시계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비트루비우스가 글에서 새로운 원칙을 주장할 때마다 ‘그리스에서는~’이라며 이전 시대 언급을 통해 정당성을 추구하였다는 점이다. 


16세기 르네상스가 끝나고 매너리즘시대에 맹활약한 건축가 팔라디오는 자신의 규범을 다시 비트루비우스에게서 찾았다. 비트루비우스의 흔적을 찾아 로마를 수차례 답사하고 많은 고전양식의 작품들과 함께 그는 <건축사서>를 남겼다. 본문에는 비트루비우스를 늘 선생 또는 안내자로 칭송하며 고대 로마 건축을 찬미하였다. 시간이 흘러 이번에는 18세기 영국 건축가들이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에 매료되어 팔라디오 양식이 새로운 시대의 규범이 되었다. 방대한 자료가 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넘어가서 고전주의가 이후 미국에까지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세기 르 코르뷔지에도 새로운 치수이론을 만들 때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그 규범으로 삼았다. 하나 단순히 그것의 비례가 지닌 아름다움이 아니라 당시 공업화에 적용 가능한 수치시스템의 당위성이었다. 


이렇듯 그리스, 비트루비우스, 팔라디오, 영국, 르 코르뷔지에의 단속적 계보를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규범을 가까운 시대가 아닌 되도록 먼 과거에서 찾는 것이다. 주변에서 누군가 동시대 것을 따라하면 표절로 비난받지만 놀랍게도 먼 과거에서 차용하는 경우 정반대이다. 오히려 지혜가 풍부하고 기발하다며 호평한다. 독창성의 배경이 되는 규범은 가능한 한 멀리서 찾는 것이 필요조건이라면 또 그것이 누구나 공감하는 요소이어야 하는 것은 충분조건이기도 하다.


<조진만 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