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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설득의 기술

찰스 무어의 성 매튜 교회. 독창성에 대한 타협 없이 설득과 공감을 통해 성취된 창의성이 돋보인다. ⓒTimothy Hursley


설계를 의뢰받은 건축물의 외관 색상을 노란색으로 하고 싶은 어느 건축가가 있었다. 그는 설계 기간은 물론 건물이 지어질 때도 일절 외관의 마감처리에 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매번 설계 미팅 때마다 노란색 넥타이, 셔츠, 손수건, 모자, 양말, 바지 등 상대방에게 노란색이 읽히도록 의도적으로 의상에 하나씩 포인트를 주었다.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러 드디어 외장 재료를 결정할 시점에 건축가는 넌지시 던졌다. “뭔가 주변에서 돋보이는 색깔이 필요할 것 같군요.” 건축주는 “예? 여기 노란색이 아니었나요?!” 말이 필요 없는 설득의 한 예이다. 뛰어난 디자인 실력, 기술 그리고 종합적 판단력은 우수한 건축가의 필요 사항이다. 하지만 건축주로부터 사용자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건축행위에 관여되는 다양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면 그의 이상은 실현되기 어렵다. 뛰어난 건축가는 분명 뛰어난 실력만큼의 설득력과 공감력을 필요로 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성 매튜 교회가 새로운 디자인을 하기 위해 건축가를 찾을 당시의 일이다. 많은 후보 건축가들을 제치고 찰스 무어라는 이가 선택되었다. 선정 이유는 그가 교회 구성원 전원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설계를 진행하겠다는 독특한 방식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한두 차례 형식적인 공청회가 아닌 신도 모두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새로운 교회의 방향과 공간에 대해 열심히 토론했다. 건축가는 가지각색의 의견들을 정리하며 스케치로 옮겼다. 이윽고 교회는 우아한 목조 건물로 완성되었고 교회 구성원들은 모두 자신들이 만든 교회라며 만족했다. 하지만 전문가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그것은 명확히 찰스 무어의 독창성 넘치는 작품이었다. 기본 구성에서부터 구석구석에 이르는 사소한 디테일까지 절대 일반인이 흉내 낼 수 있는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하지만 토론을 거듭한 결과로서 눈앞에 나타난 건축가의 디자인을 교인들은 바로 바라던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만약 무어가 그들이 말하는 바를 곧이곧대로 도면으로 옮겼다면 건축은 제대로 성립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무어는 공청회라는 수단을 통해 그가 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에게 설득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설득에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자신감이 넘치지 않으면 안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회의적인 사람은 아무리 천부적인 재능을 지녀도 창의적인 측면에서는 그 뜻을 이루기 쉽지 않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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