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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다양한 부분들의 질서로 이루어진 무작위적 도시

알제리의 수도 알제의 남쪽으로 약 500㎞, 사하라사막의 오아시스에 위치한 가르다이아(Ghardaia)는 사진과 같이 독특한 형태의 집락을 형성하고 있다. 11세기 이슬람교 음자브인들이 종교적 박해를 피해 남아프리카의 지중해 해안으로부터 옮겨와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 일거에 만든 이른바 요새 도시이다. 주변이 온통 사막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오목한 지역에 위치하고, 마을은 낮은 언덕 지형으로 가장 높은 곳에 모스크의 첨탑이 있다. 이 모스크를 에워싸며 ㅁ자 중정을 가진 집들이 원심형으로 언덕 전체를 빼곡히 메우며 펼쳐진다. 실로 한 폭의 입체주의 회화를 보는 듯한 비현실적인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마을은 1982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하늘에서 본 가르다이아. 상부의 첨탑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펼쳐진 마을이다. 첨탑은 불과 10m 높이지만 언덕의 정점에 위치해서 어느 곳에서 봐도 두드러진다.

 

불규칙하게 무작위로 들어선 건축물들이 조화롭게 보이는 것은 집을 지을 때 어느 집에서도 언덕 꼭대기에 있는 모스크의 첨탑이 가려지지 않도록 함이 배치의 원리라고 한다. 길을 먼저 만들고 집을 세우는 우리와 달리 이들은 집을 만들고 그 사이 틈을 마치 길로 활용하는 듯하다. 차가 아닌 인간의 크기로 미로와 같이 오밀조밀 얽혀있고 높은 담들 사이로 좁게 굽이치는 길들은 사하라의 뜨거운 햇볕과 모래바람을 막아준다.

작은 문들만 듬성듬성 나있는 폐쇄적인 길과 대조적으로 집들의 내부는 방들이 각각 중정으로 열려 있어 쾌적하고 기능적이다. 집집마다 형형색색의 옥상 테라스는 종교적 제약 속에서 여성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외부공간이자 바짝 붙어있는 이웃집들과 쉽게 오갈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한편 집 안에는 가구가 거의 없다. 주변이 모두 사막이라 목재 수급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수납은 벽을 파서 해결하고, 식탁이나 의자 없이 거실이나 야외 테라스 바닥에 앉아 식사를 한다. 인체 크기에 맞춘 최소한의 공간으로 모든 일상이 간소하게 이루어진다. 집들의 외벽 재료는 땅과 같은 흙으로 되어있어 도무지 어디까지가 건물이고, 어디까지가 자연환경인지 경계가 모호하게 매력적으로 어울려 있다.

 

1930년대 알제의 도시설계에 관여하던 현대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도 가르다이아의 특성에 매료되어 수차례 방문한 기록이 있다. 그곳에서 영감을 받은 르코르뷔지에는 오아시스 도시의 독특한 건축의 형태, 관개농법, 교통체계 등에 대해 여러 메모와 스케치를 남겼다. 그는 주변에 “생각이 막히면 가르디아에 가보라”고 했다고 하니 이후 수많은 건축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원천의 하나가 되고 있다.

 

<조진만 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