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어려움을 활용하는 법

서울 종로구 원서동의 공간사옥(현 아라리오 뮤지엄)은 한국 근현대 건축의 최고를 뽑을 때 늘 단골로 선정된다. 창덕궁 옆, 계동 현대 사옥에 바로 붙어 있는, 시간을 뛰어넘은 듯 아담하면서도 고색창연한 이 건축물은 고 김수근 선생(1931~1986)의 작품이다. 


이 건물은 내외부가 단절 없이 흐르며 풍요로운 한국적인 건축미와 세련된 재료 활용으로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지만 그것이 만들어진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공간사옥 1971


1970년대 초반 사업 난조로 은행의 빚에 몰려 집과 땅이 여러 차례 경매에 부쳐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그 땅에 지금의 공간사옥을 신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선생의 말을 그대로 옮겨보자. “당시 나는 안간힘을 다해 지었지요. 주위에서는 나의 어리석음에 조소까지 보냈습니다. 은행에 넘어가고 경매 중인 땅에 집을 짓는다는 것은 남의 독에 물 붓기와 같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나는 쉬지 않고 계속 지었습니다. 돈은 빌릴 수 있지만 시간은 빌릴 수도 없고, 갚을 수도 없다는 생각으로 마구 지었습니다.” 


역경을 겪을 때일수록 더욱 그 반작용의 힘을 이용하는 것, 일이 안될 때는 일을 더욱 벌이고, 반대로 잘될 때는 일을 더 가다듬어야 한다는 것. 견디기 힘들 때일수록 투지를 왕성하게 함으로써 난관을 극복하려는 자세였다.


이웃 나라 일본의 건축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시기는 1960년대였다. 당시 아방가르드적 메타볼리즘 운동의 기수였던 구로카와 기쇼(1934~2007)는 여러 기발한 공간 구상안을 통해 20대 데뷔부터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었다. 


하나, 실제 설계 일감은 없어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식비까지 절약해서 하루에 한 번 식사로 허리띠를 졸라매도 3년 동안 일감이 전혀 없자 한동안 라멘 가게에서 면을 뺀 가격으로 국물만을 주문해서 하루를 때워 영양실조로 고생했다고 한다. 


그 어려운 시간 동안 이상을 포기하지 않고 초연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유사체험 덕이었다고 한다. 누구도 설계를 의뢰하지 않았지만 건축주로부터 가상의 일을 맡았다고 가정하고 한 달간 작업실에 틀어박혀 진지하게 설계작업에 몰두하며 도면을 그리는 식이다. 


그는 이러한 식의 자발적 동기부여를 통한 수행이 훗날 실제로 설계한 다수 걸작 창조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질적으로 매우 궁핍했지만 정신적으로는 눈부실 정도로 풍요로웠다고 자서전에서 회상했다. 


‘창조는 역경 속에서 태어나는 법이다.’ 또 다른 위대한 미국 건축가 루이스 칸이 자주 하던 말이다.


<조진만 건축가>

'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랑스 건축법 제1조  (0) 2019.04.25
도시의 지하  (0) 2019.04.11
일점호화주의적 건축  (0) 2019.03.14
건축물의 다섯번째 입면 ‘옥상’  (0) 2019.02.28
문화가 흐르는 고가 하부  (0) 2019.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