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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검열자들

한스 블록, 모리츠 리제비크, 검열자들, 2018, 88분 ⓒ 한스 블록, 모리츠 리제비크


어두운 방, 밝은 모니터 앞에 앉은 이들은 ‘삭제’ ‘무시’라는 명령어를 반복하는 중이다. 그들의 결정에 따라 어떤 것은 지워지고, 어떤 것은 살아남는다.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이 우리의 사고와 신체를 장악한 현재, 끝없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정보와 주장이 넘쳐나는 이 플로어는 모든 정보에 열려 있는 ‘해방구’인가.


독재자와 정치인을 희화화시킨 나체 그림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인기를 얻던 일마 고어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를 묘사한 그림을 게시한 후 페이스북에서 퇴출당한다. 시리아 전쟁의 심각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시리아에서 전쟁 중 사망한 난민 어린이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 작가 칼리드 바라케의 이미지 역시 페이스북에서 삭제되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어떤 정보들이 꾸준히 지워지고 있었다.


2013년 한 소녀를 학대하는 영상이 소셜미디어에서 확산되다가 순식간에 사라진 사건을 목격한 후, 그 배후의 추적에 나섰던 모리츠 리제비크와 한스 블록은 비밀스럽게 활약 중인 ‘검열자들’을 찾아내고 그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검열자들은 필리핀에 사는 필리핀 사람들이었다. 실리콘밸리로부터 콘텐츠 모니터링의 권리를 위임받은 그들은 가치중립성, 객관성을 숭배하며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유튜브에 올라오는 이미지들을 살피고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을 발견하면 삭제한다. 아동 포르노, 자살 동영상, 인종혐오, 테러 관련 동영상이 주로 그 대상이 되지만, 그 외의 콘텐츠도 ‘검열자’의 판단에 따라 삭제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의 의견, 가치, 정치의 기류마저 흔들 수 있는 소셜미디어상의 결정이 과연 무엇을 근거로 이루어지는가에 대해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자는 없다. 원하는 무엇이든 쓸 수는 있지만, 누군가의 잣대로 완벽하게 통제당하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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