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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코가 없다면 모르는 세계

미카 로텐버그, 노 노즈 노즈(No nose knows), 2015, 싱글채널 비디오, 설치


애니메이션 캐릭터 스펀지밥의 단짝 친구 패트릭 스타는 백수다. 게으르지만 그런대로 살아가고, 어리석다는 세간의 평을 배반하듯 가끔은 난제를 얼렁뚱땅 해결해 버린다. 어느 날, 불가사리를 닮은 자신의 몸에는 다른 친구들에게 당연하게 붙어 있는 코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뒤, 성형수술로 코를 얻었다. 이제 그의 코앞에서 새 세상이 열렸다. 향수와 꽃다발의 달콤한 향기가 후각을 매료시켰다. 하지만 향기로운 기쁨도 잠시. 그의 코는 음식냄새, 땀냄새를 견딜 수 없었다. 몸과 마음이 고통에 빠졌다. 코가 없을 때 몰랐던 그 세계는 달콤하고도 역겨웠다. 그는 이제 코가 알려주는 세계를 포기할지 말지 고민해야 했다.


미카 로텐버그가 양식 진주로 유명한 중국 저장성 주지시의 진주공장에서 마주한 장면은 고통스럽고 매스꺼우면서도 아름답고 놀라운 과정을 담고 있었다. 진주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손은 진주조개의 부드러운 속살에 불순물을 밀어넣는다. 조개가 이 조각을 밀어내지 않고 품는다면 몇 년 뒤에는 진주가 탄생할 거다. 또 다른 여성들의 손은 진주의 희뿌연 내장을 헤집어 진주알을 골라내고, 물에 씻어낸 진주알 더미를 능숙하게 가르며 상품을 분리한다. 


영롱한 진주의 뒷면 비릿한 풍경을 목격한 로텐버그는 진주양식의 과정에 초현실적 이야기를 결합시켜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그보다 더 사실적일 수 없는 세상을 직조했다. 기계보다 빠르고 섬세하게 움직이다 잠시 지친 여인은 진주더미에 발을 묻은 채 작업대에 기대어 잠들고, 그녀의 발은 공장 너머 다른 세계로 삐죽 빠져나가 여유를 즐긴다. 공장 뒤편 어딘가 작은 사무실 작업대 앞에 앉은 금발의 백인여인은 꽃다발에 코를 대고 숨을 쉬는 일을 하는 중이다. 꽃향기를 맡은 그는 꽃가루 알레르기라도 있는 것처럼 거칠게 재채기를 하고, 그의 재채기는 면요리로 탄생한다. 보이지 않는 손들은 그렇게 생산에 열중했고, 작가는 이 세계를 애니메이션 <스펀지밥> 에피소드 제목을 따와서 ‘노 노즈 노즈(No nose knows)’라 불렀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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