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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과일로 만들어진 남자


주세페 아르침볼도, 사계절 중 여름, 1573년, 캔버스에 유화, 루브르박물관


 

밀라노 출신으로 신성로마제국의 궁정화가로 일하며 백작위까지 받았던 주세페 아르침볼도(1526~1593)는 알레고리 그림, 즉 우의화로 유명하다. 아르침볼도는 16세기 마니에리스모(매너리즘) 화가들이 그렇듯이 세련된 고객들을 위해 인공적인 성격이 강한 흥미로운 그림을 그렸다. 그는 1573년에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계절별 ‘식물 초상화’ 연작, 즉 ‘조합두상(composite heads)’으로 당대에 인기작가로 부상했다.



‘여름’이라는 인물은 16세기 유럽의 여름에 재배되는 야채와 과일들로 구성됐다. 이를테면 복숭아, 마늘, 아티초크, 버찌, 오이, 완두콩, 옥수수, 가지, 딸기, 밀 등이다. 오이로는 코를, 배로는 턱을, 복숭아로는 볼을, 강낭콩으로는 이빨을, 체리로는 입술을, 밀이삭과 밀짚으로는 옷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목 부분에는 화가의 이름이, 어깨솔기에는 작업연도가 적혀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은 공기, 불, 흙, 물의 4원소에 각각 대응된다. 이는 인생의 네 단계인 유년, 청년, 장년, 노년과 인간의 네 기질인 다혈질, 담즙질, 우울질, 점액질과도 조응된다. 이 그림은 정치뿐 아니라 우주질서에까지 주권을 미치는 황제에 대한 송덕의 의미가 담겨 있다. 하여 유럽의 다른 군주들에게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이 그림은 루돌프 2세의 총애를 받았던 시기에 만들어졌는데, 화가는 황제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특별히 이 그림을 그렸던 것 같다. 당시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황제를 유머와 위트가 담긴 그림으로 위로하고 싶었던 마음이라고나 할까!



이질적인 개별 이미지를 조합해 착시에 의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아르침볼도의 참신한 아이디어는 20세기 다다와 초현실주의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아마 이질적인 사물들이 하나의 공간에서 만나면서 낯설게 느껴지는 전치(데페이즈망)의 방법론을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예술가들도 여전히 유머와 역설을 통해 지적인 게임을 하듯 작업을 풀어나갔던 아르침볼도를 벤치마킹하고 있는 중이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