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쿠르베, 에트르타 절벽, 1869년
풍경화는 열등하다? 서양미술사는 초상화와 인물화의 역사다. 동양화의 중심이 산수화였던 것에 비하면 달라도 한참 다르다. 그만큼 서양미술사에서 풍경화는 아주 늦게 태어났다. 물론 풍경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풍경화는 초상화나 역사화의 배경으로 등장했다. 영적이고 정신적인 것을 중시하고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을 멀리한 기독교 가치관은 자연을 열등한 것으로 여기고 배척했던 것!
풍경이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이 되려면 17세기가 돼야 한다. 클로드 로랭, 니콜라 푸생, 반 로이스달에 와서 풍경은 하나의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숭고한 풍경이랄까. 마치 신의 섭리를 드러내는 일종의 신앙고백처럼 느껴진다. 여전히 기독교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그러다가 19세기가 되어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는 눈에 보이는 대로의 진실된 자연을 그렸다. “천사를 보여달라. 그러면 천사를 그리겠다”고 말할 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절대로 그리지 않겠다던 쿠르베. 그는 젊어서는 혁명가처럼 노동자, 농민, 빈민 같은 소외계층을 그리다가, 나이가 들면서 풍경, 정물, 사냥, 누드 등의 주제에 집중했다. 특히 바닷가, 산, 계곡 같은 풍경화를 여러 점 제작했다.
이 그림은 쿠르베가 머문 적이 있었던 영불해협에 자리한 에트르타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이곳은 인상파 화가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로, 모네도 같은 절벽을 여러 점 그렸다. 모네가 풍경을 완전히 빛에 용해된 것처럼 그렸다면, 쿠르베는 대상 하나하나에 명확한 물성을 부여하고 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맑은 하늘과 투명한 물빛은 대상을 파고드는 화가의 치밀한 시선을 느끼게 한다. 어떤 감상적인 표현이나 잔재주를 부릴 줄 몰랐던 쿠르베는 팔레트 나이프로 물감을 두껍게 칠해 올리는 기법을 통해 한순간의 자연의 모습을 물질로써 영원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의 자연은 신화적이고 영적이지는 않지만, 자연 그 자체가 지닌 장엄한 힘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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