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산 연작, 2018. ⓒ김지연
전주의 ‘건지산’ 근처로 이사 온 지 십년이 훌쩍 넘었다. 거의 매일 이 길을 밟다보니 숲의 들숨 날숨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야트막한 산이지만 오솔길이 정답고 ‘오송제’라는 저수지를 품고 있어 품이 넉넉하다. 편백나무 숲 건너로는 소리문화의전당과 전주동물원이 있고, 산 끝자락에는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묘지가 있다. 도시 풍경 너머 숲으로 가는 중간에 대지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봄이 오면 매화를 시작으로 복사꽃이 피고 아카시아 향기가 숲 전체를 휘감는다. ‘오송제’에 연꽃이 한창일 때면 소낙비가 자주 온다. 무성한 나무 그늘에서 비를 피하며 젖은 시간을 바라본다. 가을이면 철퍼덕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플라타너스 잎을 밟으며 저물어 가는 한 해의 무게를 느낀다. 겨울에는 누군가의 묘지에 눈이 덮이고 배롱나무 가지에 소복이 눈이 올라와 앉으면, 파란 하늘에 참새 떼가 바람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나이가 들면 자연히 외로워진다. 몸도 마음도 단순해지고 싶다. 점점 사람과 만나는 일보다 자연에 눈길이 가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건지산’ 옆에 살며 매일 계절에 따라 제비꽃, 복사꽃, 엉겅퀴, 아기붓꽃, 상사화, 물푸레나무, 단풍나무, 콩새, 소쩍새, 수꿩, 운이 좋으면 산을 가로지르는 고라니를 만날 수 있다. 산책을 나가서 이들의 모습을 꼼꼼히 담다보니 많은 사진들이 모아졌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기록하다가 좀 색다르게 수채화 같은 사진도 찍어본다.
<김지연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