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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그늘

엄마의 새

엄마의 작업. 2020. 시공례


봄이 오니 새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새소리도 하늘 밖으로 튀고 갓 돋아난 연둣빛 잎사귀 사이로 움직임이 훤히 드러난다. 산까치, 물총새, 꾀꼬리, 뻐꾸기가 저마다 힘찬 소리로 지저귄다. 막상 사진을 찍으려 하니 멀리 달아난다. 그들의 날갯짓이 마치 바다에서 물고기가 유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익산에서 자수공방을 하는 미나 엄마는 일흔넷인데 칠십이 다 되어서 딸의 어깨너머로 자수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제 제법 손에 익기 시작했단다. 흔희들 할머니들은 수놓는 일에 익숙한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소질 여부도 있겠고 자식들과 먹고사느라고 바느질을 잊고 살아온 경우가 많다. 돋보기를 써도 눈이 가물가물해져서 일찍이 포기를 한다. 요즘처럼 디자인이 세련되고 상품성이 있는 자수는 엄두도 못 낸다.


그이의 자수는 배워서 시작한 것이 아니어서 디자인도 어수룩하다. 딸이 헝겊에 연필로 적당히 그림을 그려주면 자기 마음대로 모양과 색깔을 메꾸니, 참으로 어설픈데도 정겹고 사랑스럽다. 동백꽃도, 해당화도 수를 잘 놓는다. 특히 새를 수놓을 때 뛰어난 상상력과 애정이 엿보인다. 모든 새는 각각의 개성을 갖고 있어 다른 어떤 작업보다 빛난다.


엄마는 왜 새를 좋아할까? 그저 새가 좋다고 한다. “날 수 있으니까.” 엄마가 수놓은 꽃과 새들로 방 안이 가득하다. 남들에게 보여주면 좋겠다고 딸이 엄마의 수를 가슴에 품고 찾아왔다. “엄마의 수는 형식이 없어요. 내키는 대로 하시니까요.”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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