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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2

그림자가 짙을수록 빛은 가깝다

1941년 가난한 가정에서 쌍둥이 중 첫째로 태어난 소년의 부모는 두 아이를 동시에 키울 형편이 못되어 첫째를 외할머니에게 입적시킨다. 


소년은 자라면서 건축가를 꿈꾸었다. 할머니의 생활까지 책임져야 하는 형편에 성적도 좋지 않아 대학을 포기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건축가가 되고자 하는 꿈은 접지 않은 채 공고 졸업 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건축 책을 탐독하였다. 


어느 날 헌책방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집을 발견하고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하지만 수중에 돈은 한참 부족했다. 매일 선 채로 보다 남이 사갈까 살며시 책방 구석 책더미 아래 숨기고 돌아섰다. 다음 날 책이 밖으로 나와 있으면 다시 책을 숨기는 일을 반복했다. 


안도 다다오(사진 Nobuyosho Araki)와 빛의 교회 1989(사진 Mitsuo Matsuoka).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기어코 그 책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책 속의 도면과 스케치를 필사적으로 베꼈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아 20대에 막노동을 하며 모은 돈으로 유럽으로 떠나 작품집 속의 건축물을 직접 찾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오감을 총동원해 소화하였다. 훗날 그는 안도 다다오란 이름의 건축가로 세계 곳곳에 건축을 만들고 하버드대와 도쿄대의 강단에 섰다.


그의 인생은 그의 건축보다 더 흥미롭다.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 아무런 배경도 없이 혼자 건축가로 일했으니 순조로울 리가 없다. 매사 처음부터 뜻대로 되지 않았고, 뭔가를 시작해도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가능성에 기대를 품고, 하나를 움켜쥐면 이내 다음 목표를 향해 걷기 시작하고, 그렇게 작은 희망의 빛을 이어나가며 필사적으로 살아온 인생이었다. 늘 역경 속에 있었고, 그 역경을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 궁리하며 활로를 찾아내왔다. 그는 10년 전 암으로 무려 여섯 개의 장기를 적출하였다. 웬만한 철인이라도 움츠러들 법하지만 늘 그래왔듯 멈춤 없이 전진하는 중이다. 


그는 자서전 말미에 다음과 같이 인생의 의미를 짚고 있다. “가령 나의 이력에서 뭔가를 찾아낸다면, 아마 그것은 뛰어난 예술가적 자질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무언가 있다면 그것은 가혹한 현실에 직면해도 포기하지 않고 강인하게 살아남으려고 분투하는 타고난 완강함일 것이다. 자기 삶에서 ‘빛’을 구하고자 한다면 먼저 눈앞에 있는 힘겨운 현실이라는 ‘그늘’을 직시하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용기 있게 전진할 일이다. 무엇이 인생의 행복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참된 행복은 적어도 빛 속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빛을 멀리 가늠하고 그것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몰입의 시간 속에 충실한 삶이 있다고 본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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