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안내쉼터. 건축은 무수한 제약들을 빚어 만드는 예술이다.
올 한 해 초청된 건축 강연회마다 청중에게 공통된 다음 두 가지 질문을 받았다. 하나는 창의적 설계들에서 영감의 원천은 어디서 비롯되는지? 두 번째는 다음번에 만들어 보고 싶은 건축은 어떤 것인가이다. 먼저 첫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제약’이고 두 번째에 대한 것은 ‘아무 제약도 주어지지 않았으니 뭘 한다 해도 특별하게 만들 수 없다’이다.
똑같은 사람이 없듯 무릇 똑같은 장소란 없는 법이다. 모든 땅에는 각기 다른 제약이 존재한다. 대지 조건과 규모의 제약, 법규적인 제약, 예산의 제약, 시간의 제약 등 매 프로젝트는 매번 다른 제약들을 내포하고 있다. 건축가는 늘 새로운 장소에서 생활하게 될 새로운 사람들과 그들의 새로운 꿈을 잇는 직업이다.
훌륭한 디자인이란 가만히 보면 수많은 제약들을 극복하면서 비로소 그곳에서만 실현 가능한 매력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매번 다른 제약 조건과 대지가 가진 잠재적 가치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서 출발해 공간, 구조, 형태, 재료 등 건축을 구성하는 여러 측면에서 미지의 끝자락까지 끌고 나가는 것. 나는 항상 상반되고 모순적인 가치들의 양극을 오가며 고민한 끝에 비로소 한 획 한 획 건축 도면을 그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뇌의 진폭이 크면 클수록 결과물은 역동적으로 완성된다. 건축을 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사회와 그것이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삶의 방식, 또는 공간을 매개로 한 관습화된 상호 관계성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건축은 마주치게 되는 제약들에 대해 창조적 대안을 모색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제약들을 교묘히 회피하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식의 진부한 디자인이 아니라 그것들 자체가 복잡한 시계태엽과도 같이 서로 긴밀히 얽혀 지렛대처럼 상상하지 못한 전혀 다른 차원으로 해결책을 도출하는 것이 주된 방법론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각기 다른 장점만큼이나 약점들을 지니고 있다. 나는 개인의 개성은 장점이 아닌 단점들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라 본다. 단점이 치명적이고 복잡할수록 그만큼 발휘되는 개성은 남들과 차별화될 잠재성이 있는 것이다. 나는 수많은 제약들을 사랑한다. 그 제약이 많으면 많을수록 꼬여 있으면 꼬여 있을수록 매력적인 프로젝트의 충분조건이 갖춰진 것이다.
영화의 거장 오손 웰스는 ‘예술의 적(敵)은 한계의 부재’라고 했다. 그림자가 깊을수록 대상은 밝게 빛나며, 건축은 무수한 모순과 제약들을 빚어 만드는 예술이다.
<조진만 건축가>
'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족보 없는 건축의 위대함 (0) | 2020.01.30 |
---|---|
너의 집이자 우리 모두의 도시 (0) | 2019.06.07 |
그림자가 짙을수록 빛은 가깝다 (0) | 2019.05.09 |
설계공모전의 ‘웃픈’ 추억 (0) | 2019.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