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캠퍼 광장에 있는 국립미술관 신관.
좋은 건축이 되기 위한 조건들을 논할 때 우리는 그것이 담고 있는 시대성을 이야기한다. 고고학자가 유적의 발굴을 통해 과거를 밝힐 수 있는 것은 바로 건축이 그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건축은 그 시대에 가장 적합한 기술과 재료로 지어야 한다.
오늘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전통한옥이나 초가집을 짓지 않고 벽돌로 이쁘게 치장된 건축을 새롭다고 부르지 않는 이유이다.
지난 20세기 건축사를 돌이켜 보아 그 시대를 결정짓는 원형과도 같은 건축을 찾는다면 독일 베를린 캠퍼 광장에 있는 국립미술관 신관이 바로 그것이다. 이 혁명적 건축은 1968년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어 생애의 마지막 완성작으로 매우 단순한 입방체의 형태를 하고 있다. 모더니즘 거장이자 ‘Less is more’라는 언급으로 유명한 그에게 철과 유리라는 당시대 공업화의 대표적 산물은 더할 나위 없이 합리적인 공법이자 재료였다. 미스 반 데 로어는 단순히 기술을 건축 공간을 위한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서 구현하고자 하였다. 그는 미술관을 상설전시 공간과 기획전시 공간으로 명쾌히 구분하여 전자는 광장 하부에 배치하였다. 그리고 그 위에 8개의 가벼운 철제 기둥으로만 지지가 되는 가로세로 각각 64.8m의 거대한 지붕을 띄워 그 안에 끝없이 비워진 공간을 기획전시 공간으로 계획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붕의 거대함이나 기둥의 가늚 등과 같은 기술적 성취가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창조된 투명한 공간이다. 명확히 규정된 기능과 용도는 없지만 어떠한 기능과 용도들도 가변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 스페이스의 탄생이다.
건축에 있어서 궁극의 기술이란 무엇일까. 건축물이 튼튼히 서 있기 위한 구조적 기술, 실내가 쾌적한 설비적 기술, 외관의 재료적 기술, 지속 가능한 환경적 기술, 미학적 기술 등 건축을 구성하는 기술에도 여러 가치가 있다. 서양에서 건축의 어원인 ‘Architecture’는 크다는 의미의 ‘Archi’와 기술이라는 의미의 ‘Tect’로 이루어진 ‘큰(종합적인) 기술’이라 명명한 이유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기술의 궁극적 목표는 투명함이다. 만들고자 하는 것의 본질을 가장 명쾌하게 사용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것은 마치 내용물을 감싸고 있는 포장지 혹은 인간이 호흡하기 위한 공기와 같다. 그래서 기술이란 연마할수록 투명해져서 결국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도래하는 각종 친환경 신기술과 첨단 공법들로 요란스럽게 포장한 건축일수록 가만히 보면 그 안에 지녀야 할 본질적인 새로운 삶의 가치가 퇴보함은 아이러니하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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