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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모든 것은 건축이다

비물질적 환경제어 용품 (사진 1)


이동식 거실 (사진 2)


모든 학문이 그렇듯 건축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고대 이후 오늘날까지 건축에 대한 수많은 정의 중 가장 극단적인 것을 꼽으라면 당연히 ‘모든 것은 건축이다’일 것이다. 이는 작고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한스 홀라인(1934~2014)이 1968년 제대로 실현된 작품도 없던 젊은 시절 패기 넘치게 발표한 논문 제목으로 당시 세계 건축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우리가 내용을 보다 자세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선언문 전후인 1960년대에 발표된 그의 작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물질적 환경제어 용품’(사진 1)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건축작품’은 하나의 캡슐 알약에 불과하다. 그것은 폐소공포증 환자를 위해 고안된 것으로 알약을 복용함으로써 환자의 갑갑한 공간에 대한 인식력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이 ‘건축작품(?)’의 주된 목적이다. 또 ‘비엔나 대학 증축계획’이라 불리는 작품은 증축할 건축물에 대한 투시는 보이지 않고 달랑 TV 사진이 한 장 있을 뿐이다. 홀라인은 이를 통해 TV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교육을 통해 대학의 기능이 실질적으로 확장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동시에 학교 건물의 확장에만 의존하는 기존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자 구태의연하게 학교 건물을 설계하는 건축가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기도 하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예술가 월터 피클러(1936~2012)와 개최한 전시에서 선보인 ‘이동식 거실’(사진 2)이다. 폐허와 같은 공간 속에서 한 남자가 머리에 기이한 모양의 헬멧을 머리에 쓴 채 앉아 있다. 그는 헬멧 속의 영상과 음향을 통해 주변 환경으로부터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자신만의 이동 가능한 거실 환경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개념적인 작품으로 실제 작동하지 않는 외형을 만든 것뿐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VR,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이미 이들 시대에 새로운 건축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자못 흥미롭다. 


‘비엔나 대학 증축계획’은 마치 오늘날의 유튜브나 아이튠스 U와 같은 이러닝 플랫폼이 담는 기능의 정확한 예견이기도 하다. 당시 예측한 새로운 기술에 의해 확장된 건축은 이후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의 사회를 크게 변화시켰다. 돌이켜 보면 건축은 그 시대의 문화와 사회에 나타나는 인간의 본질을 묘사하고 규정하는 역할을 하였다. 오늘의 우리는 다가올 미래 사회에 대한 건축의 새로운 정의를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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