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안도 다다오가 기획한 ‘도시의 큰 나무’ 프로젝트. 하지만 녹화의 대부분이 플라스틱 조화임이 알려진 후 오사카 시민들은 크게 분노했다. 사진은 2013년 프로젝트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마루 빌딩(왼쪽 사진)과 현재.
2013년 일본 오사카 중심부에 빼곡히 들어선 고층 빌딩 숲을 지나던 시민들은 갑자기 바뀐 도시의 풍경에 감탄과 함께 환호를 보냈다. 오랜 세월 가로를 답답하게 채웠던 거대한 30층 높이 마루 빌딩 1층에서 6층까지가 벽면 녹화를 통해 녹음이 풍성한 자연으로 변모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오사카가 배출한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아이디어를 내 지역의 새로운 상징이자 자부심이 된 ‘도시의 큰 나무’ 프로젝트였다.
흥미로운 점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녹화의 대부분이 플라스틱 조화였다는 사실이다. 벽면 녹화라는 특성상 성장하는 시간이 걸리는 넝쿨식물 위주로 조성이 되었고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초기효과에 보다 중점을 둔 것이리라. 워낙 정교하게 만든 탓에 시민들 모두 속아 넘어갔지만 몇몇 전문가들에 의해 조화임이 밝혀졌고 이내 시민들은 크게 분노했다. 시민들은 블로그와 안도 다다오에게 보낸 편지로 가짜 자연을 성토했고, 공공 토론회를 벌이고, 철거 요구 소송까지 벌였다.
이 불편한 아름다움이 위험한 것은 ‘녹화’의 의미가 녹색을 칠하기만 해도 사회적으로 인정된다는 것에 대한 우려, 어린이들에게 자연의 본성에 대한 잘못된 교육효과, 자연과 시민에 대한 모욕 그리고 플라스틱의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적 부담이다.
오사카의 자부심에서 수치로 전락한 위장 녹화는 6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절반이 풍화로 사라졌다. 반면 넝쿨식물은 상부의 조화에 막히어 타고 오르는 속도가 더디다. 애초 10년 후엔 30층 건물 꼭대기까지 자연으로 덮이는 구상을 했으나 지금으로선 불가능해 보인다. 자연과 인공이 어느 쪽도 이득을 취하지 못함은 아이러니하다.
얼마 전 길을 지나다 근래 조성된 서울 성동구 옥수역 고가 하부에서 비슷한 광경을 목도했다. 이곳은 어느 순간 원래 있던 자연은 사라지고 해괴망측한 LED 조명이 들어간 장미 조화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반음지라 식생의 성장이 느리고 관리에 정성이 많이 필요한 곳인데 위의 마루 빌딩과 같이 정치적 ‘전시효과’를 재현한 것이다. 그 광경에 씁쓸함을 삼키던 중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누가 심지도 않았는데 조화의 두 배 높이만큼 우뚝 자란 개망초와 그 틈틈이로 기지개를 켜는 민들레를 보게 된 것이다. 하찮은 들꽃임에도 자연이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한 것이리라.
가짜들 무리 속에서 보여준 자연의 눈부신 생명력은 경외적이다. 분칠이나 화장으로 만들어진 가짜 속에 진정한 우리 삶의 의미를 찾기는 불가능하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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