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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낙화의 눈물 조선로켓 강짜


선비 복장을 한 가수 싸이가 조선 팔도를 여행한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이긴 하나 시점은 다양하다. 그는 조선총독부가 식민사관의 시선에서 기록한 유적지들을 찾아가기도 하고, 김일성광장 앞 인민군 행렬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의 손에는 대한제국이 만든 로켓이 들려있고, 그 옆에는 레이디 가가가 찬조 출연을 한다. 작품 한쪽에는 싸이가 과거에 태어났다면 불렀을 법한 랩풍의 가사들이 적혀있다. 북한의 선전 문구 같기도 하고, 시조 한 소절 같기도 한 문장들은 시대 풍자와 한탄으로 가득하다.

사진가 이상현이 트렁크 갤러리에서 최근에 선보인 전시 제목은 ‘낙화의 눈물 조선로켓 강짜’. 얼핏 산만해 보이는 이 제목이 상징하는 것은 의외로 명료하다. 구한말 우리가 로켓을 가질 만큼 강력했다면 식민지도 분단도 없었을 것이며 그러므로 아름다운 꽃들이 지는 슬픔도 없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이쯤 되면 레이디 가가는 사대주의식의 수입된 문화들을, 작품 속에 등장하는 복숭화 꽃잎은 우리의 잃어버린 이상향 혹은 꽃피는 시절을 상징한다는 것도 짐작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단순히 과거에 대한 회한에 묶여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의 비꼬기식 장난들은 결국 한반도의 오늘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작품 한 장에 역사적 사건이 시간대와 상관없이 중첩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상현의 시간여행은 어디로 갈지 모르고 종횡무진이지만, 한반도가 경험한 외상과 함께 결국에는 현재로 돌아와 여전히 갈팡거리는 우리의 현실을 풍자한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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