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병상, 삼성역, 고개숙인 여자, 2001
같은 장소에 머물렀다고 해서 함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늘 하루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우리는 숱한 얼굴들과 마주쳤지만 그 누구도 기억해내지 못한다. 오히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 하릴없이 휴대폰을 뒤적거린다. 도시라는 공룡 뱃속에서는 혹시라도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 내가 그의 꽃이 될까봐 불안하다. 우리는 그 자체가 섬일 뿐이다.
방병상의 ‘낯선 도시를 걷다’ 연작은 대도시의 익명성과 장소성을 시각적으로 탐색한 탁월한 작업이다. 그의 사진이 포착한 장소들은 너무 낯익어서 오히려 낯설다. 삼성역 주변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무료한 표정들이다. 놀랍게도 북적거리는 그곳에서 시선들은 어느 하나 만나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다. 절묘하게 서로를 피해 빗겨 앉은 자세며 눈길들은 마치 연출된 장면처럼 어색해 보이기까지 한다. 작가의 섬세한 관찰력은 이렇듯 은연중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우리들의 부자연스러운 동작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엉뚱하게도 이 작품의 제목은 ‘고개숙인 여자’. 가장 확실하게 눈에 띄는 대상에 제목을 붙이는 고정관념에서 빗겨나 있다. 작가는 무심코 지나쳐버리던 아주 일상적인 풍경에 주목한 것도 모자라 이렇듯 제목을 통해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대상 자체도 교란시킨다. 그는 이렇듯 우리 몸에 익은 익숙한 도시 생활들을 잘게 쪼개어 한없이 낯선 모습으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그것은 사진 속 저 주변부에 존재하는 우리, 도시의 이방인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인간적인 감각이기 때문이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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