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마그리트, ‘거대한 나날들’(The Titanic Days), 1928
그림은 보는 사람에 따라 수만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해석한들 무슨 상관있겠는가! 작품은 하나의 생명체이고, 그림은 그것을 그린 화가와는 무관하게 자기만의 운명이 있는 것이다. 스스로 그림으로 철학을 한다고 여겼던 르네 마그리트의 ‘거대한 나날들’ 역시 내게는 그런 작품이었다.
그림 속 여성은 거대한 공포상태에 빠져 있고, 남자를 힘껏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그 남자는 몸의 일부를 점령해버렸다. 마그리트는 이 작품이 한 여인을 강간하려는 장면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 여인을 사로잡은 공포를 일종의 시각적 속임수를 통해 포착하려 했다는 것이다.
초현실주의 화가 가운데서도 마그리트의 그림만큼 비밀스러운 요소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지속적으로 보는 사람에게 수수께끼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여자는 벗었고 남자는 입었다. 여자는 전신이고 남자는 일부이다. 여자는 얼굴을 드러냈고, 남자는 얼굴을 감추었다. 마치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리게 하는 이 그림을 여자가 남자로 변신하는 중이라고 본다면, 자웅동체에 관한 신화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 무의식 속의 남성성 즉 아니무스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힘겨웠던 날들이 지속되었던 때, 나는 이 그림을 복사하여 책상 앞에 붙여두고 어려운 시절을 견뎠다. 문제를 없애지 않고(없앨 수도 없거니와), 문제와 동거할 수 있는 힘을 이 그림을 통해 배웠다.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인생이란 어쩌면 젖은 낙엽처럼 ‘들러붙어’ 있는 무언가를 하나쯤 안고 살아가는 것이리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당신에게 끈질기게 들러붙어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생각 혹은 사람이 있는가? 내 안에 낯설지만 떼어버릴 수 없는 것들, 무의식, 억압된 것, 편견, 미련, 상처, 우울, 트라우마와 같은 것들 말이다. 이렇듯 이 그림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작품이 된다. 수천 가지의 열린 해석, 이것이 걸작의 조건이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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