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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뒷모습이 아름다운 남자


안개 위의 방랑자, 캔버스에 유채, 1817~1818년, 함부르크 쿤스트할레 (출처 :경향DB)



회화에서 뒷모습은 꽤 매력적인 소재다. 바다를 바라보는 뒷모습, 창가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뒷모습은 아련하게 매혹적인 것이다. 화가들은 왜 뒷모습을 그렸을까? 뒷모습만을 단독적으로 그리는 것이 등장하려면 19세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바로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된 뒷모습이 그려졌던 거다.


낭만주의의 가장 기본적 정조는 동경이다. 동경은 무한에 대한 사랑, 즉 먼 곳을 사랑하는 것이다. 먼 곳에 대한 동경은 시간적인 것과 공간적인 것으로 나뉜다. 19세기적 관점으로 볼 때, 시간적인 먼 곳은 고대와 중세시대이며, 공간적인 먼 곳은 근동인 페르시아와 북아프리카 혹은 극동인 인도와 중국, 일본과 같은 곳이다. 이런 낯선 것, 이국적인 것, 그로테스크한 것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낭만주의의 모토인 것이다. 뒷모습은 먼 곳에 대한 사유를 반영하기에 꽤 그럴듯한 소재로 등장하는 것이다.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는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적 화가로 안개나 눈, 일몰, 달밤, 폐허, 바다 등의 풍경화를 통해 특유한 종교적인 의미를 전해준다. 이 그림은 아마 화가 자신으로 보이며, 그렇다면 최초의 뒷모습 자화상일 것이다. 프리드리히는 일곱 살에 어머니가, 이듬해엔 누이가 죽었다. 5년 후에는 스케이트를 타던 형의 익사와 누이의 죽음 등 가족의 잇단 죽음을 감당해야 했다. 그는 특히 자신의 목숨과 맞바꾼 형의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로 평생 고통을 받았다.


이 그림 속 프리드리히 앞에는 안개와 파도, 바다와 바위가 아스라이 펼쳐지고 있다. 실제 풍경이라기보다는 마음속 풍경에 가깝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림 속 화가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지 않으며, 자기 앞의 소용돌이치는 파도에 마음을 빼앗긴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내성적이고 우울한 낭만적 인간의 전형이었던 화가는 스스로를 세상 한가운데서 방향을 잃은 고독한 인간, 세상 끝에 홀로 선 인간, 무력한 인간의 뒷모습으로 형상화시켰던 것이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