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테르 브뤼헬, 농가의 결혼식, 1568년, 빈미술사박물관(출처 :경향DB)
흥겹고 떠들썩한 소리가 들리는 결혼식 장면이다. 허름한 곡식창고에서 열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가난한 농민의 혼례다. 16세기 플랑드르의 풍속을 흥미롭게 그려낸 피테르 브뤼헬은 종종 농부로 변장을 하고 동네 행사에 몰래 참여하곤 했다.
테이블을 사선으로 배치하고,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을 크게 그려 오른쪽을 강조하는 구성방법은 당시로선 매우 독특한 것이다. 카메라가 없던 시기에 마치 사진 스냅 샷과 같은 기법을 사용한다는 점이 그렇다. 정작 혼례식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신부는 이 잔치와 고립되어 있다. 초록색 휘장 아래 종이 왕관을 머리에 쓴 신부는 먹고 마시는 하객들 사이에서 두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찾아봐도 신랑 비슷한 인물은 화면 어디에도 없다. 결혼식 저녁까지는 신랑이 신부 앞에 나타날 수 없는 전통 때문이란다. 당시 플랑드르에서는 ‘자신의 혼례식에 불참한 불쌍한 신랑’이라는 속담이 있었다.
화가는 신부와 하객보다는 음식을 나르고 술을 따르는 사람들과 연주하는 악사들을 훨씬 더 크게, 더욱 더 선명한 색채로 묘사하고 있다. 넉넉한 몸짓과 발걸음을 지닌 시중 드는 사람들, 연주보다는 하객들에게 음식이 잘 배달되고 있는지 신경 쓰는 듯 보이는 악사들이야말로 이 그림의 하이라이트이다. 당시 굶주린 민초들의 삶을 바라보는 화가의 시선을 이들에게 투영한 것일까?
한편 화가는 신부를 예수로, 서빙하는 사람과 악사를 예수의 제자들로 묘사한 것은 아닐까? 테이블과 하객은 ‘최후의 만찬’ 모티프를, 술 따르는 남자는 예수가 포도주의 기적을 만든 ‘가나안의 혼인잔치’ 모티프를 환기시키니 말이다. 어쨌거나 이런 가난하지만 풍요로운 결혼식 피로연이 그립다. 차린 것 없지만 맛있는 그림 속 시대와 차린 것은 많은데 먹을 것은 하나도 없는 이 시대를 비교해보게 되는 것은 왜일까?!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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