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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눈삽과 남근

 

 

작년 1월 만난 폭설은 아름다우면서도 끔찍했다. 뉴욕에 사는 친구가 마련한 롱아일랜드의 세컨드하우스를 보러간다는 설렘은 폭설이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간단히 무시하게 만들었다. 길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속도로에는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미끄러지는 차를 마을 입구에 내버려두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수도가 터지는 등 집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문제는 그 이튿날. 평상시에는 한없이 아름다웠을 설경이 재앙처럼 느껴지는 건 그날 밤 서울행 비행기를 타야만 했기 때문이다. 우리를 맨해튼까지 실어다줄 차는 눈 속에 파묻혀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우리는 눈삽 두 개로 꼬박 두 시간 눈을 퍼냈고, 겨우겨우 차를 몰았지만 길은 아수라장이었다. 9시간의 사투 끝에 맨해튼에 돌아왔을 땐 어깨와 팔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여러 시간 눈을 퍼내며 재난영화 한 편을 찍었던 그날의 일들은 뒤샹의 눈삽 오브제와 중첩되었다. 1915년 뒤샹은 뉴욕 콜럼버스가의 철물점에서 삽을 하나 구입했다. 그러곤 삽을 자신의 어깨에 자랑스럽게 멘 친구와 함께 브로드웨이를 쭉 따라 집까지 걸어왔다고 회고했다. 작업실로 돌아온 뒤샹은 눈삽 손잡이 주변의 금속판 위에 ‘부러진 팔에 앞서서’라는 제목과 더불어 서명을 했다. 그런 다음 삽을 천장에 매달았다. 마치 모빌처럼! 뒤샹은 프랑스에선 구경할 수 없었던 눈삽이 낯선 만큼 마음에 쏙 들었다. 이로써 눈삽 작품은 뒤샹이 뉴욕에 온 후 만들어진 첫 레디메이드가 되었다.

평론가가 제목의 의미를 묻자 뒤샹은 “아무 의미가 없기를 바랐지만, 결국 모든 것은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끝난다”고 대답했다. 사실 뒤샹은 자기가 선택하는 기성품이 무관심적인 것이라고 했지만, 그 어떤 것도 그의 무의식을 반영하지 않은 것은 없어 보인다. 삽으로 눈을 퍼내는 일이 뒤샹에게 성적인 행위를 상기시킨 것은 아닐까? 학자들이 눈삽과 남근이 산스크리트어로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을 보면 말이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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