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가의 ‘기다림’은 오디션을 기다리는 무용수와 그녀의 엄마를 포착한 작품이다. 그런데 오디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디션을 마친 후의 분위기를 표현한 것처럼 느껴진다. 무용수는 오디션에서 실수로 발목을 다쳤는지 혹은 실수한 것이 겸연쩍었는지 발목을 만지작거리고 있고, 엄마는 오디션을 망친 딸을 원망하며 침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오디션 전이거나 후거나 이 장면은 난감하고 처연하다. 엄마와 딸은 동상이몽이다. 같은 의자에 앉아있지만 시선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더구나 고꾸라질 듯 바닥을 향한 딸의 얼굴은 검게 물들었고, 엄마의 얼굴은 무엇인가를 포기한 듯 훨씬 냉랭하고 차분해 보인다.
드가는 어린 무용수들을 수없이 그렸다. 무희들을 그리기 위해 오페라극장의 연간 회원권을 구입했을 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 단원인 친구들의 도움으로 무대 안쪽에서 무희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은밀히 관찰할 수 있었다. 드가가 포착한 무용수들은 당대 사회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매체다. 어린 무용수들은 아주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다. 주로 노동계층에서 선발되었고, 7~8세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했다. 엄마들 또한 인고의 세월을 보내긴 마찬가지였다. 그녀들 중 대다수는 무희보다 더 천한 직업인 세탁부들이었다. 엄마들은 딸들을 무희로 키워내기 위해 밑바닥 직업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딸을 성공한 무용수로 키우는 것만이 노동계급의 가난에서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들은 늘 딸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딸의 처녀성을 지켜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후원자를 찾을 때까지 상품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무희들을 바라보는 드가의 시선은 참으로 무심하다. 거기에는 사랑스러운 시선도 따스한 감정도 묻어 있지 않다. 평생 독신을 유지하며 인간혐오자로 살았던 드가의 시선은 냉정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예쁘장한 무희 그림으로 끝나지 않은 것이다. 이런 객관적 묘사야말로 드가의 큰 재능이었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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