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하나와 거의 매일 눈을 맞추며 지낸다. 휴일이거나 종일 외부 일정이 있는 날이 아니라면 예외가 없다. 대단히 귀하거나 뭔가 특별한 품새를 지닌 것도 아니다. 통칭 과일로 불리는 오렌지가 그 주인공이다. 애초 입맛을 채우기 위해 과일가게에서 산 여럿 중 하나였다. 사무실 책장 한 귀퉁이에 일부러 두고 바라본 지 100일이 훌쩍 넘었다. 시간의 궤적이 쌓이는 동안 당연히 오렌지의 외양은 처음과 완전히 달라졌다. 싱싱한 상태로 내 앞에 ‘생성’되었던 오렌지는 어느새 특유의 주황빛과 탄력을 거의 잃은 ‘소멸’의 시기에 들어선 지 오래다. 바닥에 닿는 부분에는 곰팡이까지 잔뜩 피어 있고 시큼한 냄새도 별로 좋지가 않다. 썩어서 퇴화 중인 보잘것없는 사물일 뿐이라는 얘기다.
책장 한 귀퉁이에 놓여 있다가 깨끗한 접시 위로 옮겨진 오렌지. 2019. ⓒ임종진
그러나 놀랍게도 나는 이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통해 내 얕은 사고의 수위를 넘어서는 일탈을 경험하는 중이다. 단지 먹거리일 뿐이었던 오렌지는 내가 식욕을 탐하거나 연민과 동정의 감흥에 흔들리게 했으며 지금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게 하는 넓은 품을 갖고 싶다는 욕망을 품게 한다. 세상 사물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고 할까. 매일같이 바라보고 살피는 과정을 통해 존재적 가치를 재인식하는 통찰의 기회를 다 썩어 사라져가는 오렌지가 주고 있는 것이다. 고정된 관념의 틀을 벗고 보면 그 무엇에 대한 상대적인 의미가 내 안에서부터 바뀌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단순한 사물 하나가 한순간 스승이 되었다는 생각에 엊그제 아침에 작은 접시 위로 옮겨서 모셔(?) 놓았다. 아직 바라볼 시간이 많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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