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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오늘하루

세월에 동화되는 시간

경로당 어르신 위안잔치에 놀러갔다가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다시 만난 듯 반갑게 마주했던 할머니. 2004. 12. ⓒ임종진


한세월 가득한 얼굴을 마주할 때가 잦다. 길거리를 지나거나 채비를 갖추어 떠난 여행지 등 어디서나 늘 접하는 평범한 노인들의 얼굴이다. 느낌이 좋다 싶으면 한동안 곁에 쪼그리고 앉는 일도 많다. 언젠가 잘 아는 지인이 내게 “네 사진의 반은 노인들이더라”며 농담을 건넨 적이 있다. 처음엔 수긍하기 어려웠지만 그 말이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노인어른들에 대한 관심 또는 애정(?)에서 비롯된 나의 시선은 어릴 적 경험에서 크게 부여받았다. 방학 때마다 차멀미를 마다하고 찾아간 외갓집에서의 기억은 내게 무척이나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버선발로 뛰어나오시던 그 환한 얼굴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평생을 농사일에 찌들어 검게 탄 외할머니의 얼굴은 내게는 누구와 바꿀 수 없는 너무나 아름답고 친숙한 얼굴이다. 


끼니때마다 찰진 음식과 과일들을 차려주신 것은 물론 까칠까칠한 손바닥으로 못하는 일이 없다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을 이루어주시는 분이셨다. 돌이켜보면 성장기 내 삶의 반은 외할머니의 사랑을 먹고 자란 것이나 다름이 없을 정도이다. 당연히 늘 외할머니의 얼굴이 그립다. 곱게 쪽 찐 머리에 낡은 은비녀를 꽂으셨던 당신의 형상은 우리 곁을 떠나신 지 수십년이 지났음에도 온전히 남아 있다. 어디에서든 오랜 세월을 쌓은 얼굴을 마주할 때면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 한 사람을 대하게 된다. 당연히 귀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그 한 사람의 존재성에 대해 고개를 숙이게 되는 나만의 동화의식이라고 할까. 그리움은 지금도 항상 채워지고 있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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