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으로써 보다 더 풍요로운 킴벨미술관의 진입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의 공통점은 바로 가장 쓸모없다는 것이다(존 러스킨). 킴벨미술관 제공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칸은 근대 건축 최후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당시 지배적이었던 모더니즘 사조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근원으로 회귀하여 고전 건축에서 모티브를 얻고 창의적인 현대 공간으로 승화시켰다. 명쾌하고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를 통해 내부에 극적인 자연의 빛을 담아내는 건축들을 선보인 그를 사람들은 ‘빛과 침묵의 건축가’라 칭송한다.
1972년 완성된 텍사스주 킴벨미술관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외부는 투박할 만큼 단순한 반원형 콘크리트 지붕을 나지막이 여섯 줄 이어 엮고 내부 곡면 천장에 가느다란 천창을 내어 온화하면서도 신비스러운 자연광이 충만한 전시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휑하리만큼 비워진 현관은 연못의 흐르는 물소리와 주변의 숲을 고즈넉이 품어 건물에 들어가기 전 예술적인 감흥에 흠뻑 도취되게끔 만든다. 일화에 따르면 칸은 “이 현관 부분이 왜 멋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묻고, 스스로 대답하길 “그것은 바로 이것들이 완전히 불필요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마이클 베네딕트는 1987년 <진실의 건축을 위하여>라는 얇지만 묵직한 울림을 주는 책을 저술한다. 당시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롯한 각종 주의들이 과잉 난무하는 시대에 진정한 건축의 본질이 무엇인지 질문하며 그것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비움(Emptiness)’이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비움이란 상실과 외로움의 골이 깊은 허무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의 첫째 의미는 명쾌함, 순수함, 투명함, 탈속적이고 고요함과 같은 것이고 두 번째 의미는 그 비움이 다양한 쓰임을 위해 적극적으로 맞아들이고 채워질 잠재성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비어 있음’은 소리 없는 울림이며, 충만되고자 하는 잠재력으로 완성을 위해 열려 있음을 뜻한다. ‘비어 있음’은 시간, 순간, 상황의 모든 것들 사이의 여백이다. 근사한 벽난로가 우리를 끌어당길 때, 아침 안개 속 어슴푸레한 창문 저편의 풍경에 이끌림을 느낄 때, 닫혀 있지 않고 살짝 열린 문을 찾아낼 때 ‘비어 있음’이 있다.
우리의 마당이나 처마 툇마루도 비움의 공간이다. 비움의 공간이지만 공동체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사유의 중심공간이며 자연과 조우한다. 또한 그것은 실로 생동적이고 다채롭다. 시각에 따라 변하는 태양의 빛에 의해, 그 그림자의 농도와 깊이에 의해, 계절마다 변하는 하늘과 바람에 의해 공간은 풍부해지며 수시로 다른 표정을 짓는다.
비움으로 인해 건축은 단순히 주어진 기능을 담는 도구의 틀을 초월한다. 진정한 완성은 미완을 품음으로써 사용하는 사람들이 채울 수 있는 생동력 있는 여백을 만들고, 또 우리를 그 속으로 이끄는 것이다.
<조진만 건축가>
'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는 것이 아닌 읽는 것 (0) | 2020.04.02 |
---|---|
기술의 진보로 점점 옅어지는 공간의 의미 (0) | 2020.03.12 |
“인간은 창조하지 않는다, 단지 발견할 뿐” (0) | 2020.01.09 |
다양한 부분들의 질서로 이루어진 무작위적 도시 (0) | 2019.12.12 |
독창성의 법칙 (0) | 2019.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