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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문두스 룰루스, ‘The Thinkin Machine’, 2016, 바르셀로나 CCCB 전시 장면.


1200년대의 스페인 마요르카는 그리스도인, 무슬림,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공존하던 지역이다. 종교갈등이 빚어내는 충돌은 빈번했지만, 문화교류에 기반한 공생 관계는 유지하던 이곳에서 태어난 라이문두스 룰루스는 정복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아버지 덕에 유복한 환경을 누리며, 음유시인이 되어 유유자적한 삶을 즐겼다. 


“부유했고, 방종했으며, 세속적”이었던 그의 삶을 바꾼 것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환상이었다. 같은 환상을 다섯 차례 경험한 뒤, 그는 이를 신의 계시로 받아들이고 성직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이교도’를 만나 개종을 권유하는 과정에서 그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고자 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믿음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었다. 신의 속성을 덕, 완전성, 품위, 위대함 등의 개념으로 규정한 그는 신의 존재에 대한 필연적인 근거를 과학적으로 도출하고, 신앙의 참을 증명할 수 있는 기술을 연마했다. 그리고 그 기술을 담아 ‘이방인과 세 현자의 책’을 비롯하여 다양한 수학식, 천문학 도표, 그림을 남겼다. 


그가 서로 다른 종교인들을 대화의 장에 앉히기 위해 선택한 기술은 다음과 같다. 1. 각 종교의 신앙조항을 모두가 인정하는 이성에 근거하여 토론하는 기술, 2. 대화의 과정에서 상호 간 직접적인 반박을 금지하여 적대감을 최소화하고, 상대방의 의견에 집중하는 경청의 기술, 3. 논쟁적인 대결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상대를 존중하면서 평화적으로 대화를 추구하는 기술.


최초로 투표 이론을 정비하여 ‘결선투표제’를 제안하기도 한 룰루스는 중세를 살았던 많은 지식인이 그러하듯 성직자, 수학자, 시인, 발명가, 예술가로 살면서 자신의 신념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실천했으나, 포교활동을 하던 중 순교하였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kimjiy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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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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