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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동백

박경훈, 동백꽃.


제주 4·3이 70주기 되던 2018년, 4·3을 기억하고 알리기 위해, 전보다 더 많은 프로그램이, 전보다 더 많은 곳에서, 전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열렸다. 검은 정장을 입은 이효리가 추념식에 참석해 시를 낭송했고, 광화문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열었다.


동백은 지고, 벚꽃이 흐드러지는 계절에 광화문 앞에서는 연일 행사가 열렸다. 사람들은 박경훈 작가가 그린 그림으로 제작한 동백꽃 배지를 가슴에 달고, 4·3을 만났다.


긴 세월, 제주 4·3의 진실을 전하는 작품활동을 이어온 작가가 동백꽃잎을 모티브로 4·3 기억 배지를 처음 디자인한 것은 60주기 되던 2008년이었다. 당시에는 몇몇 활동가들만이 가슴에 달고 다녔던 배지가 10년이 더 흐른 뒤 전국적으로 시행한 캠페인과 연결되어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4·3의 영혼들이 붉은 동백꽃처럼 차가운 땅으로 소리 없이 스러져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4·3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꽃”은 무거운 의미가 되어 사람들의 가슴에 달렸다. 작가는 지난해 가을, 이 도안을 제주4·3평화재단에 기증했다.


올해의 72주기 추념식에도, 사람들은 동백꽃을 가슴에 달았다. 제주도민에게 ‘사과’했던 대통령도, 4·15 총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인들도 동백꽃을 달았다. 대통령은 “제주만의 슬픔이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사의 큰 아픔”이라고 언급하며 피해자 유족의 명예회복에 대한 국가적 책무를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치인들은 약속했던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이 무산되어 면목 없지만, 그 이유는 ‘상대편’에 있다고 설파한다. 이들은 다시 사과하고, 다시 약속한다. 갈 길은 너무 멀고, 가슴 앞 동백꽃은 무겁기만 하다.


<김지연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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