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보, 무제, 2019, 사우스런던갤러리 설치장면, ⓒ얀 보, 사우스런던갤러리, 촬영: 닉 애시
1975년 베트남에서 태어난 얀 보의 개인사는 극적이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통일정부가 들어선 후 불어닥친 격랑을 피해 그의 가족은 작은 배를 타고 베트남을 탈출했다. 1979년의 일이다. 덴마크 선박이 거대한 바다에 떠 있던 이 보트피플을 구해준 덕분에 얀 보의 가족은 덴마크에 정착했다.
북유럽에 자리 잡은 동남아시아인들이 동서양의 문화 차이를 경험하며 놀라고 좌절했을 세월은 상상 가능하다. 그러나 그 무엇도 당연하지 않은 상황,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돌아봐야 하는 일상 안에서 성장한 덕분에 얀 보는 세상을 바라보는 예민한 눈과 감각을 키울 수 있었다.
부서진 오래된 조각상, 굴러다니는 돌멩이, 낡은 상자. 그의 눈은 세상을 두리번거리며 사물을 발견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장소에 놓이고, 어떤 사건을 목격하고, 들었을 이 사물들을 다시 엮으면서, 작가는 여기 또 하나의 의미를 입힌다.
“예술은 결코 개인적이기만 할 수는 없다. 그 누구도 그저 개인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맥락 안에 흩어져 있던 사물이 작가의 손길을 거쳐 모이고 재구성되는 과정은, 삶이란 결국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에 닿는다.
최근 몇 년간, 얀 보는 동료, 친척들과 협업하면서 작품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는 그들의 일화에 귀기울이고 그들이 주목한 시간, 장소, 사물을 함께 살핀 내용을 엮어 전시를 열었다. 개인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면서 어우러져 함께 살지만, 그렇다고 어떤 틀 안에 갇혀서도, 어떤 목적에 동원되어서도 안된다는 생각을 반영해 전시 제목은 ‘무제’로 정했다. 규정할 수 없는 개인들의 삶은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린 채, 따로 또 같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김지연 | 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