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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오늘하루

떠났지만 ‘떠나지 않은’ 친구

캄포디아 수도 프놈펜의 도시빈민촌인 ‘벙깍호수 4구역’ 마을에 세들어 살던 안양숙씨(오른쪽 끝)가 동네 주민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09. 캄보디아. ⓒ임종진


잃고 싶지 않은 친구가 있었다. 가만히 그의 삶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하게 부푸는 아름답고 멋진 친구였다. 동갑내기인 데다 자기 분야에서 나름의 열정을 채운 뒤 마흔 즈음이 되어 캄보디아를 찾아 새롭게 인생의 항로를 재설정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나 현지 주민들과 몸과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는 그 친구에 반해 사진작품이나 조금 건지겠다며 허세를 부리던 당시의 나는 비교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그는 힘겹고 고달픈 이들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가 가슴으로 온기를 나누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친구였다. 열악한 환경의 도시빈민촌에 아예 들어가 살면서 가장 가난한 이들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그의 참모습을 경탄스럽게 바라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진즉부터 그의 몸에 스민 병마가 아니었다면, 조금만 더 살아주었다면 아마도 그의 따사롭던 품 안에서 커다란 삶의 위로를 받은 이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5년 전 이 친구가 세상을 떠날 때 영정으로 쓸 사진을 고르던 중 한참을 시선이 머문 모습이 있었다. 시혜가 아닌 정을 베풀 줄 알았던 그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그의 넉넉한 미소를 수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 전 5주기에 맞춰 이 친구를 기억하는 이들과 함께 모임을 했다. 그의 동지이자 스승인 정귀순 ‘아시아평화인권연대’ 대표는 친구의 이름을 따서 만든 ‘안양숙꿈나무장학기금’의 현황을 설명한 뒤 캄보디아의 여러 청년들이 이 기금을 통해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다며 ‘양숙이는 떠났지만 떠나지 않았다’는 말로 고인을 대신해 우리를 위로해주었다. 가난을 보지 않고 ‘사람’을 먼저 보려 했던 친구의 옛 모습들은 잃은 것 없이 내 안에 남아 있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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