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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오늘하루

집으로 가는 풍경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외곽 지역인 ‘앙수놀’ 들녘에서 바라본 ‘소 가족’의 귀갓길 풍경. 2009·4. 캄보디아. ⓒ임종진


하루 소임을 다한 태양이 아직 빛을 잃기 전이었다. 얼마 전 모내기를 마친 너른 들녘은 초록의 기운을 가득 품은 상태였고 사이사이 놓인 논둑길을 따라 느린 걸음으로 딛는 산책길은 꽤나 평화로웠다. 


한가로이 풀을 뜯던 소 떼가 눈에 띄었다. 두세 마리씩 따로 모여 여러 무리를 이루었기에 처음엔 각자 주인도 따로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단순히 평화로운 저녁풍경을 만끽하게 하는 자연의 일부쯤으로 여겼을 뿐이었다.


그러나 곧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덩치가 가장 큰 소 한 마리의 ‘음메에’ 하는 울음소리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다른 소들이 한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이 색다른 풍경에 집중했다. 소들의 행동은 마치 잘 훈련된 병사들처럼 엉키거나 거침이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었다. 리더로 보이는 덩치 큰 수소가 무리의 맨 앞에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어미로 보이는 암소가 어린 송아지들을 가운데로 몰아 한 줄로 길게 늘어서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맨 뒤에 자리 잡은 암소는 주변을 한번 살피더니 이내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사람인 주인장 없이 소들끼리 펼쳐 보인 이 풍경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한 줄로 걸어가니 수를 세기도 간편했다. 모두 열한 마리의 소가 느릿느릿 집으로 향하는 모습을 끝까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마치 즐거운 저녁 외식을 마친 일가족들이 어린아이들을 챙기면서 여유롭게 귀가하는 이 풍경은 사람들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생명을 품은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울 때가 많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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