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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렘브란트의 이상한 자화상


렘브란트 ‘아틀리에의 화가’ 1626-28



소박한 실내 구석에 한 남자가 서 있다. 화면을 응시하고 있지만 왠지 머뭇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17세기 네덜란드 바로크를 대표하는 렘브란트다. 


바로크 시대에는 빛과 어둠을 강력하게 구분하는 그림이 대대적으로 등장한다. 마치 연극무대를 보는 것 같은 이 방법을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명암)’라고 부른다. 이 시대는 본격적인 자화상의 시대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아포리즘을 설파한 데카르트가 고국인 프랑스를 떠나 금서를 출판했던 곳도 17세기의 네덜란드다. 그러니 렘브란트가 당시로선 드물게, 아니 지금 생각해도 희귀한, 100여점의 자화상을 그린 것도 이해가 간다. 무엇보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자서전이다.


‘아틀리에의 화가’는 렘브란트의 나이 스무 살 무렵에 그린 것이다. 제분업에 종사하던 중산층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라틴어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등록했으나 얼마 다니지 못했다. 이 그림은 3년여 도제교육을 마치고, 막 독자적인 작업실을 운영한 지 얼마되지 않은 시기에 제작한 것이다. 아주 젊은 나이에 작업실을 운영한다는 것은 그다지 녹록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은 다른 어떤 자화상보다도 훨씬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혈기왕성하고 오만방자한 젊은 나이임에도 그림을 그리는 일이 얼마나 고독하고 두려운 일인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그림 그리기란 자기 자신과의 처절한 만남의 시간인 동시에 그 시간을 견뎌야 하는 잔인한 시간이라는 의미다. 그도 그럴 것이 화가는 작고 초라하게 그려져 있고, 캔버스는 화면의 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크고 압도적으로 그려져 있다. 게다가 화가의 얼굴은 얼마간 어둠 속에 가려져 있고, 캔버스는 화사한 빛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서 주인공은 단연 캔버스, 즉 예술작품이다. 


렘브란트는 화가가 작아져야 그림이 산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신의 은총, 즉 영감이 내려오길 기다리는 것일까? 이미 캔버스는 영감(빛)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