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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모피로 만든 식사




어느 추운 겨울, 차 한 잔이 생각날 때, 이런 차 대접을 받는다면? 뜨거운 물을 부을 수도, 차를 마실 수도 없지만, 기분만큼은 유쾌해졌을까? 독일 태생의 스위스 화가이자 조각가, 그리고 유일한 여성 초현실주의자였던 메레 오펜하임. 아카데미의 틀에 박힌 교육에 실증을 느낀 그녀는 갤러리와 카페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당대의 카페는 예술가들의 아지트이자 창작의 산실이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동료들과 토론하고 사색하는 등 풍부한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매일 드나드는 카페에서 독한 커피 한 잔은 늘 깊고 짙은 인생과 예술에 대한 상징 같은 것이었을 터!


일설에 따르면, 이 작품은 피카소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스물두 살의 애송이인 오펜하임이 대선배인 피카소를 만났을 때 털이 있는 팔찌를 하고 있었는데, 피카소가 아주 재미있어 하더란다. 피카소 같은 대가의 관심은 오펜하임을 자극했고, 그녀는 즉시 파리의 백화점에서 찻잔과 받침을 구입하고, 중국 영양의 털로 감싸버렸다. 이 모피잔 하나로 그녀는 일약 초현실주의의 스타가 되었다.


초현실주의란 이처럼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 유명한 “해부대 위에서의 우산과 재봉틀의 우연한 만남”(로트레아몽)이라는 말은 초현실주의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시구이다. 우연조차 억압된 것의 회귀로 보는 정신분석에 따르면, 아마 오펜하임에게 커피잔과 모피는 무의식적인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작가는 커피 마시는 시간을 따스한 시간, 휴식하는 시간, 풍부한 대화의 시간 등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일상 ‘낯설게 만들기’ 선수들이다. 딱딱한 것들은 물렁하게 만들고, 부드러운 것들은 딱딱하게 만들고, 가벼운 것은 무거운 것으로 만들고, 무거운 것은 가볍게 바꾸어 놓는 것! 그게 바로 모든 예술의 기본인 ‘낯설게 만들기’인 것이다. 이것은 초현실주의뿐만이 아닌, 20세기 모든 미술의 전략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