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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소년

Parisa Taghizadeh, The Boy


여자 애들이 좋아하는 사물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소년이 있다. 드레스를 입고 립스틱도 바르고, 심지어 장난감 총을 가지고 놀 때조차도 총구에 분홍색 헤어 롤러를 꽂아 장식을 한다. 아이는 소녀로 살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다만 계집아이다운 것들을 즐기고 수집한다. 사진가인 엄마의 눈에 소년은 지금 자신의 세상을 훨씬 폭넓게 열어둔 채 즐기고 있다. 그녀가 보기에 ‘소녀는 분홍색, 소년은 파란색’이라는 이분법은 천성이 아니라 어른들이 학습시킨 취향일 뿐이다.

지난 7월 작지만 의미심장한 재단이 이 소년에 관한 작업을 대상으로 선정했다. 네덜란드에 본부를 둔 이 재단의 이름은 ‘프라이드 사진상’. 세상에는 남성과 여성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성적소수자들이 있음을 사진으로 알리기 위해 생겨난 모임이다. 심사위원들은 특히 이 가면을 쓴 소년의 사진에 주목했다. 스스로를 감추기 위한 위장의 수단, 누군가의 몸을 빌려서야 비로소 온전해지는 불완전의 상징인 가면 속에서 소년은 오히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채 자신만의 카니발을 만끽하고 있다. 그의 카니발에서는 선입견도 없고 감추어야 할 취향도 없으며 남자다움과 여자다움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몽환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가면을 쓴 그만이 있다. 사진가 파리사 타기자데의 시선 속에서 아들이자 소년 혹은 소녀는 그렇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란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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